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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빈 과천소방서장
지난 2012년 2월 5일 ‘소방시설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의 개정으로 신규주택은 의무적으로 기초소방시설(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을 설치해야 하고, 기존 주택은 2017년 2월 4일까지 설치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가정에 설치를 위해 일부러 소화기를 구매하는 사람은 극소수인 것 같다. 2014년 국가화재정보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전체 화재 건수 중 주거시설에서 발생하는 비율은 26.8%이고, 인명피해의 경우 화재로 인한 전체 사상자 중 65.1%가 주택 등 주거시설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가정이 오히려 화재에 가장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법이 개정되었지만 아직 기초소방시설 설치 의무를 모르는 국민도 많고,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설마’ 하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 심리학과 로버트 치알디니(Robert B. Cialdini) 교수의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재미있는 예가 나온다. 캐나다의 두 심리학자(Knox & Inkster, 1968)가 경마장에서의 사람들의 행동을 연구하던 중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발견하였다. 사람들이 특정 말에 돈을 건 후에는 돈을 걸기 전과 비교하여 그 말이 경마에서 우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돈을 걸기 전이나 후나 특정 말의 우승 확률은 변함이 없었다. 똑같은 말이 경마장을 달리게 되지만 일단 경마권을 사게 되면 갑작스럽게 자신의 말이 우승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샘솟듯 넘친다는 것이다.

이는 일단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 결정에 대한 일관성이라는 심리적 압력에 따라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들을 결정된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맞춰 나가게 된다‘는 일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가정의 안전을 위한 기초소방시설 정책도 이런 범주에서 실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화재를 대비하여 소화기를 사고, 감지기를 설치하는 것은 때로는 불필요한 일에 투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화기를 구매해서 가정에 비치하고, 직접 감지기를 설치하면서 우리는 이런 일련의 행동에 일관성을 갖추고, 가정의 안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투자라는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도, 설득 당하기도 하면서 인간관계를 맺고 사회적 삶을 이어간다. 물건을 팔기 위한 광고나 추진 중인 프로젝트의 통과를 위한 프레젠테이션 등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설득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결정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함에 그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행복은 안전이 바탕이 되어야 지속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주택의 기초소방시설 설치 의무’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뉴스나 매스컴을 통해 화재소식이 빈번하게 들려오고 있는 요즘이다. 나와는 상관없겠거니 남의 일로만 여기지 말고 내 가정의 행복과 안전을 위해 ‘소화기를 비치하고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하라는 설득’에 한번 쯤 넘어가보는 것은 어떨까?

/심재빈 과천소방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