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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조선이 건국되면서 내건 이념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사귄다는 사대주의를 천명한 것은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다. 자주 국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건국의 주체들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천명한 것은 진정한 사대가 아닌 정책적인 것이었다. 신라가 비록 당나라를 동원해서 삼국을 통일했지만 끝내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며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것부터 우리 역사에서는 우리가 힘이 부족할 때에는 정책적인 사대를 취해왔다. 조선 건국 주체였던 이성계와 정도전이 사대를 천명하면서도 다시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도 마음속 깊이 중국을 사대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 이후 조선의 집권자들과 사대부들에게는 정책적 사대주의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인가 모화적 사대주의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은 이성과 주체성을 잃고 국가의 이익보다는 사대의 명분만을 중시하는 자아 상실의 사대주의 중독증에 걸렸다. 그들은 임진왜란으로 나라를 잃을 위기의 조선을 명나라가 구해주었으니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감은사상(感恩思想)에 너무도 깊숙이 취해 있었다.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친 의병들의 투쟁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명나라를 위해 국왕들은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어 중국 황제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대부들도 오로지 명나라의 연호만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화적 사대주의는 국시(國是)가 되어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자! 과연 중국이 조선을 구했는가? 당시 참전한 명나라는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운 것 말고 한 것이 없다. 그나마 평양성 탈환은 목숨을 건 사명당 유정과 영규 대사를 비롯한 승군들과 조선 관군의 참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명나라 장수들은 일본군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더 이상 일본과 전쟁을 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조선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오죽하였으면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군보다 명나라 군대의 가혹한 행위가 심하다고 조정을 원망했겠는가! 그런데도 모화적 사대주의자들은 명나라의 허물은 숨기고 그저 재조지은만 강조하면서 모화적 사대주의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명나라에 대한 모화적 사대주의는 현대사회에 와서 사라지지 않고 미국에 대한 모화적 사대주의로 변했다. 한국전쟁으로 공산화될뻔한 대한민국을 미국이 구했기에 이들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친미 모화적 사대주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폐단을 낳게 된다. 그로 인하여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 하고, 4대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총 사업비 18조원이 드는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국가가 되었다. 이제 미국만의 모화적 사대주의가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한 다양하고 실용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나아가 분단을 고착하는 모화적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적 국가정책을 추구하기 바란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