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세는 팔릴 책의 인세를 저자에게 미리 지급하는 돈이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아동문학가이자 이혼녀 J.K.롤링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초판 500권을 찍으면서 받은 선인세는 1천500파운드, 우리 돈으로 고작 200만원이었다. 턱없이 적은 액수였지만 너무 가난했던 조앤 롤링의 처지에서는 가뭄의 단비 같았던 큰 돈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가 6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총 5억부가 팔리고 인세와 영화저작권으로만 80억달러의 수입을 거둘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작은 출판사였던 볼룸즈버리는 이 책 덕분에 유명 출판사로 탈바꿈했고, 조앤 롤링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 작가가 되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했을 때 아무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미국에서 영어판이 나오면서 세계적인 ‘피케티 현상’이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판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출판사 글항아리는 겨우 4천유로(약 530만원)에 판권을 구입했다. 영어판이 나오기 전 해외서적 저작권 대리업체에서 불어판을 들고 국내 여러 출판사에 출판을 제안했지만 모두 외면했을 때, 글항아리 만 응했기 때문이다. 책의 인기가 폭발하자 출판계에서는 글항아리가 10억원짜리 ‘판권 복권’에 당첨됐다고 뒤늦게 부러워 했다.
요즘 우리 출판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한국어 판권 선인세 문제로 들썩거리고 있다. 하루키는 이미 ‘1Q84’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소설로 선인세 논란에 휩싸이게 한 일본 작가다. 이번 신작 에세이는 작가로서의 인생과 글쓰기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담아 상품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 국내 출판사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마침내 이 에세이는 5억원을 지른 출판사 현대문학의 품에 안겼다. 소설도 아닌 에세이에 5억은 너무 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우리 출판계의 통 큰 선인세는 이미 세계도 놀라 ‘한국은 봉’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유명 작가에게 쏠리는 독자들의 편중된 독서습관을 탓할 일도 아니지만 고액의 선인세 투자로 본전을 뽑으려는 출판사의 과다마케팅이 독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다. 아무튼 대형 출판사들의 터무니없는 선인세 전쟁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