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흉기를 휘두르던 남편을 아내가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가정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남편은 지난 2000년 가정폭력으로 구속됐고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도 받았지만, 20여년간 폭력을 되풀이하는 등 법적 처벌이 별다른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 상담은 '증가'..신고는 '제자리' = 28일 여성부에 따르면 지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전국의 가정폭력상담소에 접수된 가정폭력 상담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1999년 4만1천497건에서 2000년 7만5천723건, 2001년 11만4천612건, 지난해에는 17만7천413건으로 매년 50%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
그러나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건수는 1999년 1만1천850건, 2000년 1만2천983건, 2001년 1만4천583건, 2002년 1만5천151건에서 올해에는 9월까지 1만4천98건으로 매년 신고 건수가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처럼 신고 건수가 상담 건수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은 신고를 해도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인식이 피해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신고돼 처벌을 받은 사람 1만6천324명 중에서 구속된 사람은 586명에 그쳤으며, 대부분은 불구속 처리됐다.
신고를 하더라도 흉기를 사용하는 등 잔인한 방법이나 상습범 등 '질이 나쁘다'고 판단될 때만 구속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불구속 등으로 풀려난 가해자들은 오히려 '왜 신고를 했느냐'며 심한 폭행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 실효성 없는 '접근금지 명령' = 현재 가정폭력으로 경찰에 신고될 때 취해질 수 있는 법적 조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정폭력사범에게는 다른 형사범들처럼 형사처벌을 받거나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 그리고 가정법률상담소 등 위탁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상담수강 명령이 내려지게 된다.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 2003'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가정폭력사건 8천347건 중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것은 고작 157건으로 집계됐다.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지면 대개 한달간 가해자는 피해자의 주거지나 직장에서 100m 이내로 접근이 금지되고 이를 어기면 형사구속 조치가 내려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접근금지 명령의 위반 여부가 제대로 감시되고 있지 않아 피해자의 직접 신고가 없는 이상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때문에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도 가해자는 다시 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법원의 명령이 내려졌는데도 아무런 제한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가해자를 보고 피해자는 더 이상 법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가정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재신고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바로 형사처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보호처분을 취소하고 검사에게 이를 형사사건으로 송치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특히 이 기간에 다시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성 폭행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 한달여의 기간만 지나면 다시 가해자가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돼 문제가 반복되기도 한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위반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이 바로 유치장에 가해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책은 없나 = 경찰은 "현 제도에서는 피해자가 심한 폭력을 당했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않고 경찰이 폭행장면을 직접 목격하지 않으면 폭행 증거가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가족들의 회유나 협박,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들로 인해 피해자 쪽에서 먼저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탄원서를 내는 경우라도 전후 상황을 고려해 사법적 판단을 내려야 하며,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의사보다는 폭행여부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여성의 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의 김혜경 연구원은 "수많은 가정폭력 상담이 들어오지만 위협이 느껴지더라도 현 제도에서는 '신고하라'는 말 밖에는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에 따라 "폭행의 정도에 관계 없이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바로 구속을 시키는 식의 처벌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날로 향상되는 여성들의 지위에 맞춰 남성들의 가부장적 의식도 개선되어야 하는 한편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연합>연합>
가정폭력 '위험수위'..'접근금지' 무시 다반사
입력 2003-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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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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