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익시설 불구 각종규제 발목
문화발전 앞장 마을리더 조차
경제적이유 부정적 의견 팽배
국민 수준 운운 ‘불통’ 자초한
문화전문가 스스로 반성 절실
사회적 가치 알리기 나서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되지 않는 여러 일들을 겪게 된다. 그 때마다 우리는 누군가를 탓하며 불합리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게 되고, 변화를 시도하며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변화되지 않는 사회시스템에 스스로 지쳐 자신만의 보호막을 만들고 불통의 늪으로 빠져 들게 되는 듯하다.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사회는 이렇게 형성되어 가는 것이리라. 결국 합리적이고 갈등 없는 사회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 모두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진정한 소통은 나의 말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세에서 비롯됨을 언젠가 무심코 읽었던 ‘예수님은 온 몸이 귀였다’라는 글귀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에겐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경청하려는 귀는 없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타인을 비방하고, 불합리를 비판할 입만 있는 것은 아닐 는지. 모든 것을 비워내고 또 다른 채움을 위해 침묵으로 귀를 여는 자연의 움직임에서 진정한 소통을 배우게 된다.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불합리한 상황을 수없이 겪게 된다. 관람객 편의와 안전을 위해 진행되는 일들이 범법이 되고, 국민의 문화 향유와 발전을 위해 진행되는 일들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터부시 되고, 개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박물관은 공익을 위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로 불이익을 당하는 등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심심찮게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마다 이해와 소통을 위한 노력보다 국민의 문화수준을 비판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비난하는 것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며 불통의 벽을 높였던 듯하다.
며칠 전 지역 문화발전의 일환으로 기록화 사업을 구상하는 마을 리더들이 자문을 요청하며 박물관을 찾아왔다. 지역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열정과 의지에 감동되어 꽤 오랜 시간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이들과 대화하면서 얻은 결론은 박물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산도 부족한데 돈도 안되는 박물관을 또 만들면 큰일이지”, “우리 지역에 있는 박물관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 수익성 높은 상업공간을 만들어야 해”라는 등 거침없이 쏟아 내는 부정적 견해에서 박물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박물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왜 필요한지, 그것이 국가나 지역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이해를 구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없었기에 이런 오류가 발생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박물관은 문화의 산실이기에 문화와 박물관은 별개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발전을 도모하는 마을 리더들이 문화는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박물관은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문득 ‘행하여 얻음이 없으면 모든 것에 나 자신을 반성하라. 내가 올바를진대 천하는 모두 나에게 돌아온다’라고 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라는 맹자의 지혜가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내게 펼쳐진 불합리 앞에서 나는 지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비난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돌아보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박물관 전문가, 문화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박물관의 가치를 알리고 처한 현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 상대가 이해할 것이란 기대는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구석구석이 시끌벅적한 요즘, 다양한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문화 기록사업이 힘찬 날개 짓을 하고 있다. 뜻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으로 우리 문화가 일렁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박물관이 문화발전의 동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서 합리적 대우를 받기 위한 노력과 나를 돌아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온 몸에 귀를 열고 소통하려 노력 할 때 갈등 없는 사회가 우리에게 성큼 다가올 것이다.
/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