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은 보이는 것만 고집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기 쉽다. 눈에 보이는 것도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응시 할 수 있는, 두 눈이 없는 존재는 미생(未生)일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시선으로써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집착하기 때문에 불안과 갈등을 겪는 것도, 거기에 있다. 완전하지 못한 한 쪽 눈으로는 미생을 완수 할 수 없지만 ‘동백’과 같이 ‘빈틈없이’ 자신 내면의 ’꽃잎을 포개고’ 끊임없이 바라볼 때, ‘온점點 하나’를 찍을 수 있다. 온점은 ‘마음의 눈’으로서 ‘육체의 눈’에서 독립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피워 올린 ‘통꽃’인 것이다. “절벽 끝에선 한 사내처럼” 아지랑이와 같은 고행의 막바지에 이르러 마음에 찍은 ‘고요 한 점’을 바라보라. 시선은 ‘절벽보다 깊은 응시’로 바뀌면서 완생(完生)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