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29일 오전 용인 남사면의 한 오이농가에서 가을 장마로 인해 일조량 부족으로 시듦병에 걸린 오이를 농민이 살펴보고 있다. /하태황기자 hath@kyeongin.com

27년만에 11월 최다 ‘햇볕부족’
오이·배추 병들고 생육부진
콩도 제대로 건조 못해 피해


“이번달 내내 내린 비로 오이가 모두 시들어 죽게 생겼습니다. 비가 와도 걱정이고 안 와도 걱정이고….”

29일 오전 11시께 용인시 남사면의 한 오이 농가. 예년에는 660여㎡ 비닐하우스 3개 동에서 수확하느라 한창 일손이 바쁠 때지만 올해는 달랐다.

성인 키 만한 오이넝쿨의 뿌리 부분이 거무스름하게 썩어 있었고 주변으로는 말라 비틀어진 잎이 낙엽처럼 쌓여 있었다.

11월에 내린 가을 장마에 일조량이 모자라자 ‘오이 시듦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작년만해도 비닐하우스에서 매일 300개 정도의 오이를 수확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7% 가량인 고작 50개 정도 수준이다. 최근 첫 눈이 내린데다 주말까지 장맛비가 이어져 농가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지고 있다.

오이 농사를 짓는 이승은(53)씨는 “오이는 부모가 돌아가셔도 수확을 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매일 매일 따야 하는데 지금은 다 시들어 하루걸러 하루 겨우 수확하는 형편이다. 16년 농사 인생에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가뭄을 겪은 터라 이번 가을 장마가 ‘단비’로 불리지만 오이, 콩, 배추 등을 재배하는 농가의 사정은 정반대다.

콩 수확시기도 이미 놓쳤다. 11월 말이면 벌써 출하를 끝냈을 시기지만 콩을 제대로 건조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장단콩으로 유명한 파주 일부 지역은 전체 수확량의 20% 정도인 70㎏들이 가마 100여 개 분량을 거둬들이지 못했다.

한 농민은 “말리려 내놓은 콩들이 (수분 때문에) 불고 있다”며 “일조량이 계속 낮을 경우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표 김장채소인 배추의 경우 생육이 부진한 데다 가격마저 하락할 것으로 전망돼 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올해 경기도(수원 기준)의 11월 강수량은 110.8㎜로 지난 1989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많은 양이다. 이번 주에도 비소식이 예고되면서 애써 기른 작물을 수확하지 못하게 된 농민들의 근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내 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연일 비가 계속되며 햇볕이 부족해 작물이 시듦병을 앓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습도가 높다 보니 곰팡이성 병균 피해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욱·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