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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얼마 전 우편물을 뜯어 보고 깜짝 놀랐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월간지 ‘여성중앙’에 매달 4쪽씩 연재된 ‘와이프행진곡’ 전체를 묶은 두툼한 만화였다. 표지에는 금혼식 기념만화라고 적혀있었다. 박수동 작가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책을 묶었다. 매월 독자들을 울고 웃겼던, 작가의 표현대로 “자식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인생살이 만화”가 고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무려 17년간 연재되었으니 달동네 문간방에서 시작한 신혼부부는 아파트 전세를 거쳐, 1985년에 15평 아파트에 입주한다. 1988년 어린이날에는 ‘마이카’를 구입하고, 매번 승진에서 탈락한 남편은 1990년 10월 ‘드디어’ 차장으로 승진한다.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이 바뀌기는 했어도, 작가는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었을 터이니 연재분 전체를 묶은 ‘와이프행진곡’안에는 시대의 삶의 기억과 시간이 녹아있다.

‘와이프행진곡’은 ‘신혼행진곡’으로 연재된 막 결혼한 신혼 부부의 문간방 셋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젊은 남녀의 밀고 당기는 신혼생활 사이로 가끔은 처연한 생활을 드러낸다. 너무 더운 여름날, 부엌에 다라이를 놓고 물을 받아 들어가 있으니 대번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한다. “수도물 아껴써요. 지난 달에 수도값이 8천원이 넘게 나왔어!” 이런 구박 끝에 억울해 적금타면 마이홈으로 가자고 이야기하자 아내가 말한다. “코딱지만한 집도 천만원이 다 넘어요.” 남편이 손가락으로 계산해 보니 “2년에 100만원씩 모은다치고 1천만원이면 20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아내는 “20년동안 집 값은 가만히 있는가요?”라고 소리 지르고, 남편도 “왜 나같은 놈에게 시집”왔냐고 화를 낸다. 둘은 울며 화해하고, ‘아마 날씨 탓인가 봅니다. 신랑도 울고 각시도 한참 울었습니다’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문간방 에피소드 뿐만이 아니다. 승진을 위한 남편의 노력, 새벽 3시에 일어나 연탄불 갈기와 같은 오래전 풍경에서 시작해 최근 이야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가 구슬픈 엘레지처럼 깔려있다.

물론 당대에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 역할에 충실한 중산층 가정이 구성된다. 하지만 그 시대의 다른 작품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묘사하는 남자의 의식이나 행동이 자주 소재로 활용해 반성하는 남자를 그린다. 어린이 만화의 걸작 ‘번데기야구단’은 평범하고 가난한 ‘번데기동’의 어린이들이 구성한 야구단 이야기다. ‘효자물꽁’이란 에피소드는 시장에 좌판을 펼친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물꽁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대에 이처럼 처연하게 가난을 정면에서 마주한 작품을 난 아직도 보지 못했다. 명랑만화에서도 ‘가난한 골목’을 외면하지 않았던 작가라서, 남자의 반성을 만화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당대의 다른 성인만화에서 흔히 활용되는 대상화된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하는 여성이 나온다. 그래서 ‘와이프행진곡’은 시대의 증언이다. ‘와이프행진곡’에 담긴 1977년에서 1994년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는 것인가?

‘와이프행진곡’은 박수동 작가가 금혼식을 기념해 직접 출간했다. 보고 싶어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만화를 서점에서 언제라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우리는 만화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