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생각지 못한 경기의 결과가 마치 잘 짜여진 드라마처럼 펼치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프리미어 12’ 4강전에서 일본에 0대3으로 끌려가던 한국 야구팀이 9회 대거 4득점해 거둔 짜릿한 역전승은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버저비터(농구에서 타임아웃 버저와 함께 들어 가는 골)의 짜릿함, 연장전 추가 시간의 역전골, 9회말 투아웃 풀카운트에서 터지는 역전 만루 홈런 등 스포츠에서는 수많은 드라마가 연출된다. 하지만 가장 큰 감동은 최약체 팀이 강호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일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수원시청이라는 이름의 내셔널리그(3부 ) 소속팀이던 수원FC가 지금 드라마를 쓰고 있다. 챌린지 리그(2부)에서 18승11무11패로 3위에 오른 수원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서울 이랜드를 제압한 뒤 플레이오프에선 대구 FC까지 무너 뜨리며 클래식리그(1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상대는 K리그 클래식 11위인 부산 아이파크. 이 고개만 넘으면 한국 축구사에 새로운 역사가 쓰여진다. 올 초만 해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 스타 선수도 없다. 오직 선수들에겐 축구에 대한 열정과 닥공(닥치고 공격)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알려진 스트라이커 자파는 2년 전까지 일본 4부 리그 격인 FC오사카에서 뛰던 선수였다. 올 시즌 6골 4도움을 기록한 정기운은 무적 선수였고, 배신영은 울산 구단이 지명을 포기해 수원에 왔다.
어제 홈경기에서 수원은 아이파크를 1대0으로 제압했다. 내일 부산 원정경기에서 최소 비기기만 해도 1부리그에 오른다. 이는 2013년 한국프로축구리그가 승강제를 실시한 이후 클래식에서 강등된 팀이 아닌, 챌린지 창단 팀이 1부로 올라가는 최초의 팀이라는 역사를 쓰게 된다. 스포츠가 ‘각본 없는 드라마’라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는 없다. 아이파크도 2부리그 강등이라는 치욕을 모면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게임에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가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다고 실망할 것도 없다. 우리는 이미 수원 FC로부터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미 수원 FC가 기적을 이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