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의 생선을 토막내고 칼은 자신이 만든 칼집 속으로 박힌다 단칼에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칼의 힘은 단호하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생선을 잘라 먼 바다를 꺼내놓는 칼 생선은 배가 갈리고 토막이 났어도 눈 감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 도마 위에 박힌 칼 한 자루 예리하게 삶의 단면을 겨누고 있다 토막난 생선의 건조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다
조동범(1970~)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때로는 진실을 마주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말해야 하는 강제 앞에서 침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단칼’에 온전히 벗겨져 ‘거짓의 표피’를 꺼내놓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한다. ‘도마 위의 생선’처럼 현실에의 눈을 뜨고, 거짓의 입을 벌리고 살았던 ‘삶의 단면’을 바라본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먼 바다를 꺼내놓는” 해체된 내장은 비릴 수밖에 없다. ‘배’가 갈리고 ‘토막’이 났어도 ‘눈’ 감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을 상상해 보라. 수분이 빠져나간 ‘건조한 눈망울’같이 진실은 “도마 위에 박힌 칼 한 자루” 앞에서 엎드린 ‘고해성사의 표정’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