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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시대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응답하라 1988(응팔) 시청자라면, 더욱 공감하리라. 드라마를 통해, 대중가요를 만난다. 가요를 유행가라고 부르듯, 그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만난다.

응팔의 가요가, 그런데 아쉽다. ‘너무’ 많다. 많으면, 좋다고? 아니다. 장년에겐 좋을 수 있다. 노래를 읊조리며, 기억 속의 내가 등장하니까. 응팔의 가요가, 신세대에게도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시대의 문맥 속에서, 진정성을 획득해야 한다.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서, 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걸까?

‘레트로마니아’란 책이 있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지은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표지엔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란 부제와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 책과 연관지어서, 한국의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이리 말한다. “디지털 음악 아카이브는 현재라는 평면 위에 과거의 음악을 뒤섞는다. 디지털 세대는 이 점에서 복고가 일상화된 세대다.”

복고는 이미 일상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이 그대로 증명한다. 한국인은 이미 레트로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아쉽다. 복고가, 복고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응팔에선 그 시대에 먹었던 음료와 과자도 등장하고, 전자제품과 승용차도 등장한다. 전자는 다시 소비될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응팔에 등장하는 가요가 전자가 되어야 한다. 비유컨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 시대의 노래가 이 시대의 노래로 잘 ‘번역’되어야 한다.

평생을 번역에 몰두한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은 이리 말한다. “번역이란,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싱싱한 것과의 만남이다.” 황현산 선생은 ‘어린 왕자’를 네 번이나 고쳐 번역했다. 그의 후기에선 번역에 있어서 ‘무리하게’는 부정적으로, ‘엄숙하게’는 긍정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내용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 ‘무리하게’번역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울러 ‘어린왕자’의 번역은 궁극적으로 ‘때때로 ‘엄숙하게’ 말할 줄 아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응팔이 ‘1988년이란 오래된 시대에 관한 2015년의 싱싱한 번역’이길 바란다.

드라마 속의 보라(류혜영)와 관련된 노래를 짚어보자. 운동권 학생으로 분한 그녀가 감옥에 간 선배의 것으로 추측되는 승용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 ‘동지가’는 어떤까? 그 시절, 이 노래를 부른 꽃다지가 지금 듣는다면 어떨까? 보라와 선우(고경표)라는 연상연하 커플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 배경음악인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1990)는 왜 선곡을 했을까?

그렇다면 응팔의 바람직한 선곡방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선희와 정서용의 공존이다. 단일화는 함정이다. 그 시대에 이선희콘서트가 있었고, ‘나 항상 그대를’이 히트했다는 걸 더 이상 강조하지 말라.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 때 신촌블루스가 생겨났고, 그런 젊은이들에 의해서 한국적인 블루스음악이 태동했음을 알려라.

드라마 ‘응팔’에서 보라는 닭장차에 끌려가다 파주란 낯선 곳에 떨어진다. 선우에게 연락을 취한다. 늦은 밤 둘이 만날 때, 신촌블루스(정서용)의 ‘아쉬움’이 배경음악이다. 한 시대의 메이저와 마이너를 공존하면서, 시대의 가치와 노래의 효용성이 더욱 돋보이는 ‘응팔’을 기대한다. 응팔이 제발 계속 가요톱텐, 별이빛나는밤에, 토토즐에만 연연하지 않길 바란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