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권 길병원 암센터 힐링 텃밭가꾸기
지난 2일 가천대 길병원이 본관 5층 옥외정원에 마련한 텃밭에서 농업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인 치유농업에 참가한 암환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쪽파와 딸기를 심고 있다.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길병원, 치유농업 프로그램 도입 본관 옥상에 조성
환자들 작물 기르며 서로 위로 상실·우울감 떨쳐내
인천지역암센터, 웃음강의·힐링캠프 통해 심리치료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지난 2일, 우비를 둘러 입은 사람들이 손을 분주히 움직이며 텃밭에 쪽파와 딸기를 심고 있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바람이 꽤 차게 느껴졌지만 파를 심는 이들의 표정에서는 추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들이 쪽파를 심은 곳은 다름 아닌 병원 옥상. 가천대 길병원이 본관 5층 옥외정원에 마련한 텃밭이다. 그리고 작물을 심은 주인공은 암환자들이다.

병원 옥외정원에 텃밭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인천지역암센터는 농업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인 치유농업을 병원에 도입했다. 암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실감과 우울감 등을 밭을 일구고 작물을 기르며 떨쳐내고자 하는 목적이다.

암환자들로 구성된 자조모임 환우들과 자원봉사자들이 10월부터 12주차 과정으로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강의 및 실습을 받고 있다.

흙관리와 종자채종, 퇴비만들기, 텃밭 설계, 모종내는 법 등 농사에 필요한 강의를 받고 있다. 실습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암환자들은 “새로운 생명이 내 손을 통해 조금씩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삶의 긍정적인 기운을 얻곤 한다”며 “같은 아픔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해 더욱 즐겁다”고 입을 모았다.

암은 치료 과정에서, 혹은 치료 후에도 정서적인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수술, 항암 등 치료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회와 멀어지게 되고, 정서적으로도 극심한 불안을 느낄 수 있다.

과거의 암 치료가 수술, 약물 등 암 세포를 제거하는데 맞춰져 있었다면, 최근에는 환자가 건강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까지를 치료의 개념으로 본다.

인천지역암센터는 2011년 개원 이후 매월 ‘해피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 미술요법, 림프부종 예방 교육, 요가, 라인댄스 웃음 치료 등 다양한 강좌가 진행 중이다. 암환자나 보호자, 가족 누구나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웃음치료 강의를 수강하던 암환자들끼리는 서로를 언니, 동생으로 부르는 자조모임을 형성했다. 현재는 가입 회원만 50명이 넘는다.

4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가천대 길병원 암환자 자조모임을 이끌고 있는 정원구(67) 회장은 “웃음이 약이라고 하는데, 아파봤던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나눠먹고, 같이 울어주기도 하고, 모르는 것을 서로 알려주면서 더 웃을 일이 많아졌다”며 “아프고 나서 내 성격의 50%가 더욱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으면서 인천지역암센터는 매년 인천 10개 구·군으로부터 제안서를 받아 암환자를 위한 강좌 개최를 지원해 주고 있다.

인천지역암센터는 또 1년에 두 차례씩 보건소와 연계해 암환자와 함께 힐링캠프를 다녀오고 있다. 올해는 힐링캠프와 더불어 집에서 방문 간호 치료를 받고 있는 재가암환자들을 모시고 전북 고창으로 희망캠프를 다녀왔다.

모처럼 집을 벗어나 자연과 마주한 암환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기회가 자주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기뻐했다. 환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 또한 인천지역암센터의 몫이다.

박연호 가천대 길병원 암센터 소장은 “사람마다 외모나 성격이 다르듯 암도 수천 가지고 치료 성과도 다르다”며 “다학제 협진으로 환자에게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내 적용하고 암 진단으로 겪는 심리적 변화와 스트레스를 총체적으로 관리하고 돕는 것이 암센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암이라는 병 자체가 평생 갖고 살아야 하는 만성질환 비슷한 개념으로, 암을 치료한 뒤 환자가 어떻게 사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