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으로 보면 심란했던 을미(乙未)년도 저물어간다. 어떤 물건이든 방치하면 혼란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물리학 법칙은 현실에서 경험해 볼수록 딱 들어맞는 원리이다. 어릴적 흙으로 담을 쌓을 때 진흙을 뭉쳐 이겨서 벽돌을 만드는 틀에 넣고 말리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벽돌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 모양을 다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조 개혁적 사상가였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은 과거 답안으로 제출한 춘부(春賦)에서 샘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흐르고 흘러 대해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중간에 탁한 물과 같은 소인들이 흘러들어와 그 기세가 위로는 하늘의 명을 더럽히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윤리를 우습게 만들면서, 게다가 그런 분위기를 즐기기까지 하여 많은 악폐가 쌓이게 된다고 읊었다.
맑은 샘물도 중간에 흐린 물에 섞이면 혼탁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혼탁한 물이 스며들어 섞이면서 흐르고 흐르면 그 물은 맑아질 수 없다.
그래서 주역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마무리되었다는 기제(旣濟)라는 괘에 지금은 아무 일 없이 완성적이지만 반드시 가깝거나 먼 미래에 근심과 걱정거리가 생길테니 미리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연말이 되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연초에 먹은 마음을 변치 않고 지니고 왔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정말 그렇게 한 사람은 그런대로 자만하지 않고, 전반부에 미리 준비하고 다스리지 못한 것이 있어 말미에 어지러워졌으면 진솔하게 반성해보고 다시 새 해를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것이 을미년 어지러워진 것[未亂]을 다스리는 자세가 될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