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001000767800039101

“부자에게 돈 쓰는 건 투자라고 말하면서 왜 빈민에게 쓰는 돈은 비용이라고 하는가”라고 주장했던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은 빈민지원을 ‘투자’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막대한 오일머니를 ‘물 쓰듯이’ 쏟아부어 대중의 마음을 얻었다. 이들은 강력한 빈민구제 정책을 통해 미국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저항하면서 남미에 ‘좌파 물결’을 불러일으킨 장본인들이다.

1999년 집권한 차베스는 석유 수출을 통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무차별 복지에 주력해 왔다.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다면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노는 땅을 빈민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었고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해고가 불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한술 더 떠 쿠바와 니카라과 등 주변 반미 국가들에 석유를 반값에 파는 만용도 부렸다. 하지만 수출의 전부를 차지하는 원유가격이 급락하면서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됐다. 2013년 3월 그가 사망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들어섰지만 한번 무너진 경제는 회생이 어려웠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68.5%였고 올해는 159%에 달할 것이라고 IMF는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국가 살림이 거덜나자 나라 전체가 치안 부재의 피폐한 사회로 전락했다. 지난 6일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예상대로 집권 통합사회주의당(PSUV)은 완패했다. 이로써 베네수엘라는 파라과이·콜롬비아·아르헨티나에 이어 네 번째 우파정권 국가가 됐다. 남미 대륙에서 ‘좌파 벨트’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남미 사회에 횡행했던 포퓰리즘이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 사회에 차베스 열풍이 불었다. 공영방송 KBS에선 차베스 정책을 찬양하는 다큐멘터리가 공공연히 방영됐고, 일부 언론은 축구선수 마라도나가 차베스를 만났을 때 ‘붉은 영웅을 만나는 마라도나’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중주의 전략으로 성과를 거둔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던 교수는 지금 교육감이 됐고, 후에 교육감을 지낸 모 인사는 2008년 베네수엘라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지금 이들이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몰락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남미 좌파 정권의 몰락은 포퓰리즘이 이제 다시 고개를 쳐들고 있는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을 주고 있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