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은 사진
윤주은 시인·수원시인협회회원
문인은 문학 작품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따뜻한 영혼으로 살아갈 토양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최근 고은재단 설립과 고은문학관 건립 건으로 소란스러워진 수원의 문학계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수원문인협회 회장이 발표한 성명서를 읽고 몇 가지 이해하지 못할 내용 때문이다.

첫째, 고은 시인의 학력과 과거 불교에 머물렀던 경력이 마치 자격이 부족한 것처럼 쓰인 문장이다.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태어나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한 개인의 과거사를 들춰내 지적 소양이나 인격의 부족인양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혼란의 시대 중심에서 홀로 꿋꿋이 소신을 갖고 문학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인간 승리의 훌륭함에 고개를 숙여야 마땅하다. 오늘날 학력위조에 논문 베끼기까지 일삼는 부끄러운 일까지 간혹 보도되는 시대에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학력과 방황기의 거처까지 솔직하게 밝히는 사람을 비난한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고학력자 우대 풍토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갖가지 사회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오늘날 고학력은 자랑도 자격도 아니며 오로지 성실함과 능력만이 칭찬 받을 만한 자격이다.

둘째, 성명서에는 고은 시인의 작품을 두고 질보다 양으로 관심을 끌었다며 그 결과물은 성의 없는 작품들로 남발되어 있다고 했다. 문학을 통한 독자와의 공감과 감동은 많은 부분 독자 개인적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은 시인은 누구보다 많은 작품을 발표하며 그 부지런함과 치열함을 보였으며 많은 애송시를 남겼다. 작품 중에 완성도가 개인적 기대치에 미치지 않는다 하여 문학성과 평생의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창작의 고통을 아는 문인들이 할 수 있는 발언은 아니다.

셋째, 굴러들어 온 돌과 박힌 돌의 기준은 무엇인가. 수원에 ‘굴러온 돌’ 아닌 분이 몇이나 있을까? 옆집에 새로 누군가 이사를 오면 우리 좋은 이웃이 되어 사이좋게 살아보자며 떡도 나누는 것이 우리 미풍양속이다. 그런데 3년이나 같은 수원에 살고 있는 사람을 ‘굴러들어온 돌’이라 하면 구석기 시대의 씨족사회로 돌아가겠다는 것인가. 게다가 고은 시인은 수원 지동마을 시골목에 수원문인들과 시도 같이 쓰고 수원의 몇몇 시인, 역사학자들과 함께 수원의 이야기를 시로 써서 책을 내기도 했다.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으면서 우리의 이웃이 아닌 ‘박힌 돌을 빼내는 굴러들어온 돌’이라는 돌팔매질에 나까지 숨이 막힌다. 고은 시인이 처음 수원으로 이사 올 때 마땅치 않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분명한 수원시민으로 좋은 문학 풍토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넷째, 문학관 이름에 있어 ‘고은’ 명칭만은 안된다는 식의 발상은 참으로 곤란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객관적인 기회균등의 법칙도 무시한 발상이다. 성명서에 거론된 대로 수원의 자랑스러운 인물 중에 나혜석, 홍성원, 박팔양 등도 두말 할 것 없이 훌륭한 분들이다. 그러나 현대는 세계적 마케팅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이 문제는 시민들과 문인들이 함께 설문조사를 통해 문학관 이름을 공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학관은 문인들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적 가치와 꿈을 심어주기 위해 시민의 세금이 투자된 시민들의 것이다. 그러니 문인들이 문학관 이름을 갖고 독점하려는 듯 남부끄럽게 목소리 높일 일은 아니다.

지금 수원의 문인들은 문학관 이름에 왈가왈부하기보다 수원에 건립될 문학관의 규모와 특화 사업, 구성과 운영방향, 시민을 위한 문학 강좌와 이벤트 등을 연구하고 추진해나가는데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성명서가 정말 수원지역 문인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정인지 의문스럽다. 수원지역 문인들의 모든 의견인 양 발표된 성명서는 단지 수원문인협회의 의견일 뿐 500여명이 넘는 수원 문인들의 의견은 아니었다.

한 사람에게는 아픈 기억일 수 있는 과거사를 들추고 온 생을 바쳐온 작품을 폄하하는 일, 수원과 관련된 다른 이름은 다 되어도 ‘고은’ 이름만은 안 된다는 식의 글 내용은 대표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관을 둘러싸고 격앙되어 부끄러운 모습이 아닌 문인으로서 귀감이 될 만한 올바르고 지혜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윤주은 시인·수원시인협회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