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음식이든지 배가 고파 먹는 음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배가 불러지면 산해진미도 맛이 없으니 맛이라는 게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음식의 맛을 전통적 오행관념에 따라 오미(五味)로 구분한다. 木에 해당하는 신맛, 火에 해당하는 쓴맛, 金에 해당하는 매운맛, 水에 해당하는 짠맛, 土에 해당하는 단맛이 그것이다. 입과 혀의 기능이 정상적이라면 누구든 이 다섯 가지 맛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용’이란 책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음식을 먹지만 그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고 하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사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달고 신 맛을 누구든 느끼는데 그건 일반적인 맛이고 깊은 맛을 보는 이가 있으니 바로 그 사과를 경작한 농부이다. 사과밭을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저 달고 신 맛을 느낄 뿐이지만 농부가 맛보는 사과 하나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맛이 모두 함축되어있다. 사과 종자의 맛도 느껴지지만, 한 해 동안 겪었던 가뭄이나 홍수 등 하늘의 기후상황도 느껴지고, 땅에서 이루어지는 토양의 비옥도도 느껴지고, 농부로서 자기가 흘린 땀방울의 정도도 느껴진다.
자신이 관심 없어서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사과 하나의 맛을 보는 것도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맛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할까! 어느 분야든지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도 그저 겉핥기로 맛을 보게 된다. 그래서 ‘주역’에는 대다수 사람들은 날마다 진리 속에서 그 진리를 쓰면서 살지만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관심과 정성이 들어가면 맛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