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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교에서 배운 인문학은
돈을 좇는 집단위해 내인생을
‘구조조정’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새해엔 최소한 것들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추운곳으로 내보내는
‘죄송’한 사회가 안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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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소설가
‘문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 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고등학생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부모님이 취직 때문에 이과를 추천한다고 했다. 왜 소설을 쓰는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를 묻다가 화제가 진로 문제로 넘어가자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졌다.

며칠 전 모교인 인하대에 강연을 갔다가 나는 다시 한 번 ‘문송’이라는 말을 떠올려야 했다. 학교는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었고 거기에는 철학과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같은 학과를 없애고 영어영문학과와 일본언어문화학과의 정원을 감축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신 이공계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정원을 늘리는데 이러한 구조 조정의 목적은 정부가 추진하는 ‘프라임 사업’에 선정되는 데 있다고 했다. 당연히 반발과 갈등이 잇따랐고 네 명의 학생이 단식에 들어간 끝에 학교 측은 이러한 계획안을 어제 철회했다.

인하대뿐 아니라 요즘 많은 대학이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는다. 거기에는 대학의 역할을 직업훈련소 정도로 축소시켜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취업률로 대학의 등급을 나누고 정부가 돈을 푸는 세상, 그런 한국의 오늘에, 대학이 세계를 통찰하고 더 나아가 전망하는 사회구성원을 키워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한마디로 ‘노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인문학이 축소되고 당장의 ‘벌이’가 가능한 학문만 남긴다면 우리 모두는 안락하고 안녕한 세계에서 살 수 있을까. 기업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이윤을 위한 집단이고 그 집단의 욕망은 개개인들이 조절할 수 없는 속도와 방향으로 나아간다. 양극화와 노동 소외 같은 문제들은 심각해져 이제는 어떻게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자본의 입맛에 맞게 개개인의 인생을 설계한다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이고 가능한 것인가. ‘사람이 미래다’라며 청년들의 풋풋함과 패기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를 내보내던 굴지의 대기업은 최근 입사한 지 일년도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자’ 명단에 넣어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런 이들을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모교에서 배운 인문학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있게 하는 것이었다. 철학이야말로 그렇게 인간으로서 향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에 대해 일깨우는 강의들이었고 외국문학과 언어에 관련한 강의들은 ‘여기’가 아닌 ‘밖’을 사유하는 창이었다. 그 강의들 어디에서도 돈을 좇는 집단을 위해 내 인생을 ‘구조조정’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을 경계하려는 학문이 있는 대학에서 도리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힘을 얻고 실제로 그것이 장려되는 오늘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우리가 ‘문송’한 이유는 이렇듯 우리의 효용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배운 정당한 가치들을 무력화시키는 세계의 부끄러움을 알고 직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이 오고 한해가 마무리되어 가지만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의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시간들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 정리해고에 맞서기 위해, 은폐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굶는 것을 선택해야 했던 올해의 많은 사람을 떠올려본다. 이들을 이런 추운 날들로 내보낸 사회야말로 ‘죄송’해야 할 당사자가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말할 때의 사회란 무엇인가 우리 개개인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다가올 새해에는 이러한 ‘죄송’의 악순환을 넘어 서로가 서로의 안녕함을 응원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금희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