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살기도 바쁜 형편인데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소리 내는 것은 세상의 이치
소리 없애겠다고 서슬푸른 칼을
휘두르기전 근본부터 반성해야
그의 작품 중에 ‘낙씨정에 묵으며(宿駱氏亭)’라는 시가 있다. 일곱 자로 된 4행시, 칠언절구인데 시재가 둔하여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 의미를 단순히 해석해도 그 아름다움과 깃든 뜻이 심오하다. 대나무로 둘러싸인 연못은 티 하나 없고 물가 난간도 깨끗한데(竹塢無塵水檻淸) 그리움은 아득히 첩첩한 성에 막히었네(相思초遞隔重城). 흐린 가을 날씨는 흩어지지 않으니 서리는 늦어지는데(秋陰不散霜飛晩) 마른 연잎을 남겨두어 빗소리를 듣노라(留得枯荷聽雨聲).
얼핏 보기에는 쓸쓸한 정취가 두드러진다. 늦은 가을, 그리움에 사무쳐 빗소리를 듣는 슬픔이 애절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애상이 아니다. 여기에는 제 때 오지 않는 시운(時運)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책무가 엄연하다. 첫 행의 의미는 깨끗함이다. 죽오(竹塢)란 대나무가 마치 방죽처럼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물을 모아두었다는 의미의 수함(水檻) 또한 연못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티 없이 깨끗하게 정돈해 두었다. 옛사람들이 연못을 가까이 했던 것은 늘 자신을 비춰보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단정하게 가꾼 연못가에 나와 앉으니 그리운 것, 보고 싶은 것이 떠오른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첩첩한 중성에 갇혀 나가지 못한다. 그리움이나 사랑은 사적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인간의 솔직한 본성이다. 그리움이나 사랑이 쉬 전달되지 못하고 막히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라 할 수 없다. 최근에 이르러 젊은이들이 3포 세대니 5포 세대라 자조하니 젊은 사람들이 본성 중의 본성인 사랑을 포기하는 세상이란 말 그대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의 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세상인 것이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이상은이 살던 당나라 말기도 그러했다. 어떤 세상이기에 그리움을 첩첩 막는가.
절기는 서리가 내려야 하는데 내리지 않고 음산하게 흐린 가을날씨가 흩어지지 않는 때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 하늘이 높은 멋진 계절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가고 눈서리 휘몰아치는 겨울이 와야 한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겨울이 추워야 봄이 기름진 법이다. 그런데 수확도 끝나고 물가도 깨끗하게 치워두었다. 죽오, 수함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겨울맞이 준비를 끝내두었지만 흐리고 음산한 가을날씨는 사라지지 않고 서리조차 늦어지고 있다. 떠나가야 할 것이 가지 않는 것은 세상의 이치, 인간의 도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우리는 보통 어려운 시기를 겨울에 견주고, 찬서리에 견준다. 그러나 이상은은 난세를 겨울에 비유하는 상투적인 표현을 넘어 그것이 무엇이든 제때를 지키지 않는 것이 재앙이라는 진실을 적시하였다.
세상이 그러할 때 사람이 할 일은 무엇인가. 현실을 감추지 않는 것이다. 연못가를 깨끗이 치웠으나 마른 연잎을 모두 거둬들이지 않은 것은 눈이 내려야 할 겨울에 비가 내릴 것을 경계한 뜻이다. 너푼너푼한 연잎이 말라서 물 위에 떠 있는 것이 좋은 경치일 리 없다. 더구나 거기에 초겨울 빗방울이 후두들기는 소리는 심란하고 울적한 것이다. 그러나 우울한 심회를 돋울망정 마른 연잎을 거둬 소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빗소리가 요란해도 그것은 연잎의 문제가 아니라 때 아니게 쏟아지는 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마다 살기도 바쁜 터에, 음산한 날씨는 건강에도 해로운 터에,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소리를 내는 것은 세상의 이치, 인간의 도리가 어긋나고 있기 때문이다. 소리를 없애겠노라 서슬 푸른 칼을 휘두르기에 앞서 소리를 자초한 근본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윤진현 인문학연구실 오만가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