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은 인간사회 모든 영역이
낮은 차원에서 높은 곳으로
나아가 더 큰 행복을 구현하는것
내년엔 상업주의적 욕망 탈피
가치와 위상 회복해야 한다는걸
스스로 깨닫고 실천하는게 중요

사실 문학에서의 퇴행 국면 역시 진작부터 있어왔다. 일찍이 한국문학사에서 매우 연면한 흐름을 이어온 미적 범주 가운데 하나는 일종의 참여적 열정이었다. 그런데 당대 정치권력과 날카로운 대척점을 형성하면서 저항의 미적 실천을 추구했던 이러한 흐름이 일정하게 퇴조하면서, 우리 문학은 사회 변화에 대한 회의와 내면으로의 경사가 첨예한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이 공동체 단위의 대안적 지표까지 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것이 감각적 현존에는 충실하면서도 일종의 보편성까지 환기하는 데는 그 철학적 기반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체성을 통해 구체적 보편성을 적시(摘示)하는 것과 파편적 개체성이 그저 단순하게 공존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깨닫게 된다.
근본적으로 문학은 인간 사회의 모든 영역이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 보다 더 큰 행복을 구현하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다. 이러한 세계를 열망하고 또 발견해온 문학적 실례들은 참으로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례를 지난 문학사에서 찾아내어 현재의 동력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의 첨예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문학은 고정된 실체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적 특수성에 따라 진중한 자기수정을 요청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작업이 자기 본위적 영웅주의나 값싼 계몽성의 대중화 작업에서 찾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방법은 한 시대의 이상을 위해 공감해왔던 이들의 시간을 가장 왜소하게 하는 교양주의적 억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문학은 개인적 자유의 확장이자 통합의 정신을 매개로 하는 한 시대 전체 구성원의 것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는 그동안 매우 심도 있는 축적을 이루어왔던 인문학과 기초 학문에 대한 급작스런 홀대를 보이고 있고, 인간 문화가 오랫동안 축적해왔던 고전적 저작과 정신의 해체 작업을 내남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조급증을 드러내면서, 더구나 지식 사회가 철저하게 시장에 종속되면서, 더욱 현란한 상품 미학의 외피를 입은 채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비우호적인 상황에서 예언적이며 동시에 성찰적일 수밖에 없는 문학이 가질 수 있는 타개책은 무엇일까? 이는 한 마디로, 그 예언자적 저항성과 자기 성찰의 장르 규정성을 더욱 강화해가는 것으로 모아질 것이다. 새삼 강조하는 것이지만, 문학이 자본주의의 자기 전개 과정의 절정에서 펼쳐지는 신자유주의 노선과 양립하기는 어렵다. 이 양립 불가능성이 바로 문학만의 독자적인 위의(威儀)로 난국을 돌파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주는 더없이 확실한 지표일 것이다.
이제 우리 시대는 모든 존재를 사물화하고 획일화하며 나아가 상품 가치로의 부단한 환원을 꾀하는 자본주의의 기율에 저항하는 인식과 방법을 여러 경로로 요청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동안 사회나 내면의 문제에 집중적으로 할애되어왔던 문학의 관심이 성(性), 생태, 지역, 미시권력 등 다변적 인접 개념들로 확장되는 시각 속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2016년, 우리 문학은 다원화를 꾀하고 성취하면서 지속적인 신생의 에너지를 생성해낼 것이다. 이미 우리 문학사는 그러한 유산들로 충일하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 문학은 상업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 이러한 가치와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실존적 자각에 가파르게 서 있지 않은가.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