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거리에 넘쳐 흘렀던. LP판을 파는 가게는 물론이고 세평 남짓한 비디오 점포, 오래된 낡은 서점, 사치스런 백화점, 라면 쫄면을 팔던 분식집, 그리고 골목 골목 어디에서든 캐럴이 넘쳐 흘렀던 그런 적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변치 않는, 늘 그 목소리였던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구석 구석을 가득 채우면 우리들의 마음은 얼마나 경건해졌던가. 사람들의 얼굴에는 즐겁고, 행복한 웃음이 넘쳐 흘렀다. 국민소득이 1천달러에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었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자로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런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설레는. 캐럴은 그런 묘한 ‘힘’이 있었다.
이런 캐럴이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성탄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 이유로 거리에 캐럴이 사라진 것을 꼽는 사람이 많다. 거리에 캐럴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이다. 신화가 사라진 세상은 희망이 없는 법이다. 우린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불신이 팽배하면서 세태는 더 각박해졌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실적이 부진한 기업들이 씀씀이를 줄이면서 연말 특수가 사라진 데다 기부의 따뜻한 손길도 예년보다 줄었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여·야 국회의원 18명이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을 제작 발매했다고 한다. 새누리당에서는 김 대표를 비롯해 김상민·김성태·나경원·문정림·신의진·윤명희·이운룡·전하진·조원진·홍문종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관영·서영교·송호창·전정희·한정애 의원이 참여했다. 정의당에서도 심 대표 외에 김제남 의원이 참여했다. 캐럴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반갑지만, 과연 정치인들이 부르는 캐럴을 듣고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성탄절의 거룩한 메시지를 되새길 사람이 몇 명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1년 내내 정쟁으로 국민을 힘들게 했던 그들이 빨간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캐럴을 부르는 모습에서, 단언컨대, 불쾌감을 느끼는 국민이 더 많을 것이다. 지금은 캐럴을 부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아직도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등 쟁점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정치인과 캐럴. 심해도 너무 심한 부조화(不調和)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