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으로 가득한 겨울 자작나무 숲
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을 따라 이파리에 매달린 애벌레가 일광욕을 즐기고 참새 떼는 빛을 쪼며 흥겨워하고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겨울 자작나무 숲
허형만(1945~)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시간을 수평적이라고 한다면 공간은 수직적이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고정된 공간 속에서 시간의 단위로 현전한다. 이 시간에 있지 못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 없는 사람인바, 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시공간은 언제나 동행자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살고 싶었던 오늘이며,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죽고 싶은 오늘을 산다. 그런 한해가 석양으로 물들고 있다.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면 지나온 시간의 “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을 만나게 된다.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을 느껴보라. “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과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희망이 오고 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시간은 분명히 갈등과 충돌이 해소된 장소로서 ‘인간들의 숲’이 된다. 그렇다면 2015년을 아름답게 저물게 할 수 있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