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정치 조금이라도 퇴행 시킨다면 ‘새정치 성공’
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적 각성과 성찰 절실

1987년의 통일민주당의 분당으로 평화민주당이 창당되고 그 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첫 대선 때 통일민주당의 김영삼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으로 분열된 민주세력은 정권창출에 실패했다. 이듬 해 치러진 13대 총선은 대한민국 정당사 최초로 여당이 과반 획득에 실패하는 여소야대의 분점정부 상황을 초래한다. 결국 1990년 3당 합당은 민자당이라는 거대여당을 탄생시킨다. 결과적으로 여권의 통합으로 1992년의 14대 대선의 승자는 여당의 김영삼으로 귀결된다.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의 경선에 불복해 탈당한 이인제 후보의 대선 출마는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의 패배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7년 야권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통합되었으나 이명박후보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했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으로 총선을 치렀으나 결과는 참패였다. 그리고 4년전 12월에 민주통합당으로 또 한번 야권은 통합되지만 19대 총선도 야권의 패배였다. 같은 해 18대 대선도 승리는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의 몫이었다. 통합이 승리를 백 프로 담보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분열하는 세력은 선거에서 고배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한국정치사의 교훈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안 의원은 생각보다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나 호남에서의 안 의원에 대한 기대가 수치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옛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체제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아직은 개인 안철수와는 별개의 ‘안철수 현상’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야당의 무능으로 강고해지기만 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오만에 실망하는 양심적 보수와 알량한 패권에 안주하여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와 대안 제시에 실패한 더불어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합리적 진보세력은 무당파로 속속 편입되고 있다. 이들이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형성한다. 결국 선거정치에서의 승리는 이들 중도파의 지지에 달려있다. 안철수의 실패한 듯이 보였던 ‘새 정치’, 여전히 실체를 알기 어려운 ‘새로운 정치’는 그래서 여전히 우리 정치의 본질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안철수의 딜레마가 있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세력간의 다툼이다. 단기필마로 적진을 헤집고 초토화시킬 수 없다. 정치의 본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을 묶어내고 그들의 이해와 갈등을 표출·관리함으로써 다양성과 통합이라는 일견 상충하는 가치들을 조화시키는 데에 있다. 극에 치우쳐 있는 보수와 대척의 진보 사이에 존재하는 중도의 무당파들에게 정치적 참여를 확대시킬 수 있다면, 지역에 기반하고 낡고 흘러간 정치적 문법에 익숙한 구태의 정치적 퇴행을 조금이라도 역류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새 정치는 성공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기술이 필요하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 실리와 명분의 공생, 사실과 가치의 동거가 황금비율로 분할되어야 한다. 이상과 명분, 가치만이 존재하는 그런 정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실리와 현실, 사실의 벽이 너무도 견고하다는 데에 있다. 세를 확장시켜야 하는 현실정치적 측면과 ‘새 정치’는 양립 가능한가. 안철수 신당의 창당 이후 새 인물의 영입을 상수로 한다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비주류, 호남 인사들의 합류가 없으면 교섭단체의 구성이 벽에 부딪친다. 그렇다고 이들을 받아 들인다면 안철수 의원이 표방하는 새 정치와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도 문제다. 그래도 중도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대표해 낼 수 있다면 한국정치발전의 단초를 볼 수는 있다. 여기에는 대권에만 집착하지 않는 정치인 안철수의 정치적 각성과 성찰이 절실하다. 안철수 신당의 방정식은 정치적 언사와 수사처럼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최창렬 객원논설위원 · 용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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