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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은 가장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위엄있게 행동하면 질서 잡히듯
각자 위치에서 분수 지키고
예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바르고 건강한 사회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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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장
어느새 을미년(乙未年)이 저물고 병신년(丙申年)이 밝았다. 똑같은 시간의 연속인데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시간과 또 다른 시작을 가능케 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매년 새 각오로 한 해를 설계한다. 2015년은 선함과 정직의 상징인 양의 해였기에 그렇게 살겠다는 각오로 한 해를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의 행동 분석뿐만 아니라 교수들이 뽑은 한자성어 혼용무도(混用無道)에서 알 수 있는 것은 2015년이 그 어느 때보다 거짓과 위선이 난무했던 혼란하고 무질서한 사회였다는 것이다. 혼용무도의 사회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범이었음을 깨닫고 반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반성과 각오로 한 해를 설계할 때 좀 더 바르고 행복한 사회는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원숭이는 꾀와 재주가 많은 동물로 인간과 특별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에 친근하다. 재주와 지혜의 상징인 원숭이의 해 2016년은 지혜로운 언행으로 혼용무도의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박물관 체험교육에 참석한 아이들의 입에서 “병신~년~”이란 단어가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듣고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사회 구석구석에서 ‘병신년’을 패러디한 익살스런 단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벌써 무게 중심을 잃고 가벼운 언행으로 가치 없게 출발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난 한 해 잘못된 생각과 행동으로 얼룩진 시간을 보냈다면,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새 각오로 임할 때 발전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좀 더 건강하고 바른 사회를 희망했기에 시간의 흐름 속에 시작과 끝을 만들어 주기적인 반성과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했던 것이리라.

요즘 특정인의 이름에 수식어처럼 ‘병신년’을 붙여 놓고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지혜롭지 못한 처신이 사회를 병들게 할 수 있음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주신 예라는 덕목(德目)이 새삼 큰 가치로 다가오는 것은 오늘 우리의 잘못이 어디로부터 기인된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인 듯하다.

예(禮)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도리에 어긋남 없이 분수에 맞게 행동하는 지혜로움이라 여겨진다. 한 집안의 가장은 가장답게, 선생은 선생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제자는 제자답게 행동할 때 위엄과 질서가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그 지도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무질서 속에 병들어 가게 될 것이다. 결국 건강하고 발전적인 사회는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지혜로움으로 예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때 가능한 것이리라.

병신년이 시작되려는 지금 필자는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등장하는 ‘원숭이’를 떠올리게 된다.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의상과 왕관을 쓰고 한껏 멋을 내며 걷는 꼴이 우스꽝스러우나 자신의 그런 모습을 돌아보지 못하기에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어리석은 행동이 지금의 우리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우리가 ‘우신’을 예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 자리에서 분수를 지키고 예를 실천하려 노력할 때 가능한 것이리라.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함에 있어서도 나를 먼저 돌아보는 지혜와 상대를 폄하하는 직설적 표현보다 풍자와 해학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성숙된 자세가 요구되는 때이다.

박물관에 오롯이 담겨 있는 선조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각자 ‘자기다움’의 자리에서 분수에 맞는 언행을 실천하려 노력할 때 바르고 건강한 사회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정체성 없는 사람들의 가벼운 언행이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예를 다하려 노력할 때 붉은 원숭이는 밝고 행복한 시간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게 될 것이다. 이런 희망으로 행복한 ‘병신년’을 설계하며 새로운 출발을 위해 성큼 발걸음을 내디뎌 본다.

/한국희 우석헌자연사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