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불경기는 직장 동료들을 차가운 거리로 내몰았고, 상사들은 후배들을 위해 또다시 명퇴라는 멍에를 짊어졌다. '오륙도', '삼팔선' 등 자조섞인 신조어에 서민들은 쓴 웃음을 지었다. 20대 청년 백수들이 넘쳐났고, 벼랑끝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국 땅에서 죽음을 택했다. 불경기와 실업, 자살, 사스 등 온통 우울한 말들이 회자됐던 2003년이 역사의 뒤편으로 지고 있다.
▲IMF때 보다 심각하다는 경기침체는 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빚에 찌들려 탈출구를 찾지 못한 서민들은 '자살'과 '자녀 살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지난 7월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한 주부가 세 자녀를 14층 창문 바깥으로 내던졌다. 용인에서는 1억원이 넘는 카드빚에 시달리던 30대 회사원이 3살짜리 아들과 60대 노모를 죽인 뒤 자살을 기도했다. 부평에 사는 20대 아버지는 두 자녀를 한강에 내던져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불황 한파는 또 20대 청년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 지난 1년간 늘어난 실업자중 절반 이상이 20대였고, 개인 신용불량자중 20대의 비중도 급격히 늘었다.
이제 취업 재수와 3수는 필수이고, 서른살이 넘도록 쭉~ 백수인 청년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맹랑한 얘기만은 아닌 시대다.
▲올해는 유난히 '로또'로 상징되는 복권 열풍이 거셌다. 지금이 지독한 불경기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10대 청소년 부터 70대 노인들까지 로또 대박에 흥분했고, 1년 내내 로또광풍은 식지 않고 있다. 별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 국민들은 여전히 한탕을 노리며 로또열풍에 젖어있는 것이다.
▲3D업종을 중심으로 한국경제의 한 축을 맡았던 외국인 근로자들도 올해는 힘들고 우울하기만 했다. 그늘진 일터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던 이들은 줄줄이 쫓겨났고, 인력부족에 시달리던 많은 3D업체도 덩달아 문을 닫아야 했다.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쫓기는 신세가 된 외국인 근로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지금도 당국의 단속을 피해 어둠속을 전전하고 있다.
▲올 한해 인천·경기지역에서도 크고작은 사회적 이슈가 발생했다. 인천에서는 송도미사일기지 이전과 도시개발구역의 공영개발방식을 놓고 수년째 공전하면서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인천시민들의 72%는 생활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며 기회만 되면 인천을 떠나고 싶다는 충격적 조사결과도 있었다.
수도권 지역 곳곳에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에 서민들은 또한번 좌절해야 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분양가에 인천·경기지역 아파트 값도 덩달아 치솟아 서민들을 힘들게 했다.
그나마 시민들의 시름을 달래준 것은 스포츠였다. 인천을 연고로 한 SK와이번즈가 2000년 팀 창단 뒤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모처럼 야구열풍이 불었다. 프로축구단인 인천유나이티드FC도 창단해 시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경기지역에서는 수도권 역차별에 정치권과 행정기관, 시민 모두가 분노했다.
역차별은 도민들의 역량이 결집되는 계기가 됐고, 각종 법령의 지원대상에서 배제됐던 수도권이 수혜대상에 포함되는 소득을 얻어냈다. 사패산 터널공사 재개 결정도 큰 관심거리였다.
종교와 관련된 사건도 잇따랐다.
연천지역에서는 모 종교단체가 생명수로 사체를 부활시키기 위해 수개월 동안 사체를 보관해오다 적발됐고 또다른 모 종교단체 교주는 배신한 신도를 살해명령을 내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우울하고 힘든 2003년의 끝머리,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고, 희망이 있다.
누가 보지 않아도 묵묵히 땀흘리는 근로자들, 열심히 앞날을 준비하는 젊은이들, 참교육을 실현하려는 이 땅의 교사들,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나선 상공인들의 눈빛이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