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객(刺客)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형가(荊軻)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직전에 연나라에서 그를 암살하기 위해 형가를 보냈다. 그는 진시황을 죽이러 떠나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바람 소리 소슬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返)'. 춘추 전국시대 자객은 '자신을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보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형가가 진시황에 위해를 가하려 한 것은 개인의 원한 때문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협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이런 무모하면서도 낭만적인 용기는 자신은 물론 연나라의 몰락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중국 5세대 감독 장이머우(張藝謀)는 그를 주인공으로 영화 '영웅'을 만들었다.
2005년 9월 실시된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이는 '괴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였다. 그는 우정민영화에 집착했다. 당내에서 크게 반발하자 마침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실시를 선언했다. 그리고 반대했던 의원들을 공천하지 않았다. 반발한 의원들이 탈당했다. 그러자 고이즈미는 그들의 지역구에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인사들을 내보냈다. 인기 아나운서, 미모의 여성 관료, 심지어 유명 요리연구가를 '공천'했다. 이를 '자객 공천'이라고 한다. 2009년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오자와 이치로 대표대행이 미모의 여성정치 신인들을 대거 내보내는 자객공천으로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침몰시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표가 탈당 의원의 지역구에 "새피 수혈을 통한 물갈이"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탈당파를 겨냥해 이른바 '배신의 정치'에 대한 응징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른바 '자객공천'. 탈당파인 유성엽 의원을 겨냥해 정읍출신 김병관 웹젠 이사회 의장과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가, 김한길 의원 지역구에 표창원 범죄 연구가가 거론된다. '자객공천'은 참신하고, 지명도가 매우 높은 연예인·방송인·체육인 등이 적격이다. 자객의 미덕은 강력한 무공(유명세)이다. 결정적인 순간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오직 표적을 제거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꺾을 수 있다. 어설프게 공천했다가 자칫 '물 귀신 공천'으로 공멸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