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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병자호란이 터졌다. 무능한 인조와 서인 세력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하여 국제정세나 백성들의 삶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사라져가고 있는 명나라밖에 없었다. 명나라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라며 명에 대한 충성을 고집하고 있었다. 중국땅은 이미 여진족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조선의 기득권들은 명나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비난의 소리를 하면 대역죄인으로 몰아 죽였다.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의 삶을 위해 주체적 국가 건설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를 버리고 주체를 선택하겠는가! 결국 이러한 무지가 오랑캐라 부르던 그들 여진족에게 항복하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백성들이었다. 그 백성 중에서도 청나라로 끌려간 여인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여진족들은 조선 여인들이 아름답고 일을 잘한다고 하여 사대부의 여인이나 평민 여인이나 가리지 않고 만주로 끌고 갔다. 그 여인들은 노비로 팔려가거나 여진족들의 성 노리개가 되었다. 조선 지도자들의 무능으로 결국 피해는 조선의 이름없는 나약한 여인들이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불합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 여인들 중 만주를 탈출하여 조선의 압록강을 건넌 여인들도 있고, 집안에서 돈을 주고 풀어내어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도 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을 '고향[鄕]으로 돌아온[還] 여인[女]'이라고 해서 '환향녀'라고 불렀다. 그런데 양반사대부 집안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배척을 받았다. 이 여인들이 여진족에게 몸을 더럽혀진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환향녀'가 아닌 '화냥년'이라는 욕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니 이 여인들이 어떻게 만주까지 가게 된 것인가? 그것은 여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나라의 잘못이요, 자신들의 권력과 금력만을 위하여 나라를 잘못으로 만든 무능하고 거짓된 관료들과 사대부들의 잘못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꼭꼭 숨겨두고 온갖 고생을 하다 돌아온 슬픈 여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들은 거꾸로 이 여인들을 이용하여 가문의 명예를 빛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 여인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살해하고 그녀들이 스스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결했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그녀들을 죽인 그들은 나라로부터 열녀문을 하사받고 세금 면제와 군역 면제 등 온갖 특혜를 받으며 지역 사회에서 명망가 행세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환향녀의 진실이다.

최근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의 성(性)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성 노리개 역할로 강제 끌려간 우리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100억원도 안되는 10억엔을 한국 정부에 주면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선전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도 대한민국 정부가 이전해주기로 했다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보며 300년 전 환향녀가 생각났다. 우리가 다시 이 여인들을 화냥년으로 만들 것인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았던 이 가녀린 여인들에게 300년전의 기득권들처럼 오늘의 정부와 보수 세력들이 똑같이 그녀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는 아직도 300년 전의 그 어리석은 조선인가?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