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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수소탄 실험 성공 잔치를 크게 벌였다. 김일성광장이 좁다는 듯 온통 무도회를 열었고 불꽃축제도 벌였다. 그 광적인 군중이 수소탄이 뭔지 알고나 그랬을까.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8월 6일 인류사상 최초로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진 원자탄 한 방에 26만 명이나 죽었다. 북한이 수소탄 실험 성공을 발표하자 히로시마 주민은 이튿날(7일) 즉시 '핵이라면 치가 떨린다'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원폭도 그랬거늘 수폭은 어떨까. 미국 수소탄의 아버지 에드워드 텔러(Teller)가 인류 최초로 1952년 11월 1일 태평양 산호초 섬에서 실험 성공한 수소탄 '아이비 마이크(Ivy Mike)'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자탄의 450배였다. 그걸로 6·25 전쟁 중인 한반도 북쪽을 때릴 수도 있었지만 3만7천명의 미군이 희생을 당하면서도 쓰지 않았던 이유를 32살짜리 김정은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인 소련도 수소탄을 만들었고 미국보다 1년 후인 1953년이었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수소탄인 '짜르 봄바(Tsar Bomb)→차르 봄'이라는 '황제 폭탄'은 1961년 소련이 만들었다. 무게 27t, 길이 8m, 지름 2m의 어마어마한 몸집의 '짜르 봄바'의 위력은 26만을 죽인 히로시마 원폭의 무려 3천800배라고 했다. 당시 폭파 실험으로 100㎞ 밖에서도 3도 화상을 입었고 1천㎞ 거리의 핀란드 유리창이 박살 나는가 하면 그 충격파는 지구를 7바퀴 반이나 회전할 정도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증언이다. '최고 존엄' 김정은! 그런 게 갖고 싶었던 것이고 수소탄 보유국으로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이 꼽힌다면 그 6번째가 조선인민공화국이기를 바랐던 건가.

도대체 4차, 5차… 몇 차까지 핵실험을 할 건가. '미국 중국 한국과의 평화조약 체결 때까지'라는 게 8일 베이징발 로이터통신 보도였다. 같은 날 조선노동당 서기 김기남은 '핵은 자위수단'이라고 했다. 누가 쳐들어간다고 자위수단인가. 그는 휴전선 확성기 방송을 가리켜 "미제와 남조선이 전쟁 갈림길로 몰아가고 있다"고 했다. '엉뚱하기가(erratic), 여우처럼 미친 거 아닐까(crazy like a fox, perhaps)'가 9일 뉴욕타임스 보도였다. 김정은, 그건 아니기만 바란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