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겸
김호겸 경기도의원(더·수원6)
만 3세부터 5세까지의 유치원 교육과정과 어린이집 보육과정을 통합해 보육료를 지원하는 누리과정 예산 논란이 뜨겁다. 경기·서울·광주·전남은 누리과정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았고 전북·강원·세종은 유치원 예산만 편성했으며 다른 지자체도 몇 개월치만 반영한 상태여서 보육대란이 불가피하다. 언뜻 보기에 어린 아이들의 보육료 예산을 두고 교육청이나 지방의회에서 예산 편성을 미루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경기도의회 역시 지난해 12월 31일 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여야 간 격렬한 대립과 갈등 속에 2016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광역단체 최초로 준예산 체제를 맞았다. 이 때 의장석을 점거한 새누리당의 현수막 내용은 '더민주는 누리과정 예산 편성하라!'였다. 과연 당연히 편성해야할 누리과정 예산을 더민주가 편성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야당 출신의 교육감들이 정치공세 차원에서 몽니를 부리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여야 간 정쟁의 논란거리도 아니고 진보와 보수 간 진영 싸움의 대상도 아니며 오로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예산 부담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 논란의 핵심은 중앙정부의 안일한 공약 남발과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천박한 인식에 있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공약집 272쪽에 누리과정과 관련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을 선언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통일적인 처리가 필요한 사무는 국가사무로서 최종적인 비용 부담 주체는 당연히 국가다. 이에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영 교육부 차관은 누리과정 총 예산 4조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이미 시·도교육청에 내려 보냈으니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한 것은 직무유기라고 한다. 이 역시 어불성설이다. 교육청은 수익사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일정 범위에서 재원을 보조하도록 법률에서 내국세의 20.27%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정하고 있다. 이는 누리과정 사업 이전부터 국가가 교육청에 계속적으로 지원해오던 법정 교부금이다. 그런데 경기도만 하더라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즉,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4조원을 기존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더해 별도로 챙겨준 것이 아니라, 교부금 중 4조원을 누리과정에 쓰라는 것이다. 이는 2014년 말 누리과정 갈등이 본격화되자 정부가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해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의 의무지출 경비로 지정한 것과 관련되는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서는 교부금을 총액으로 교부하도록 정해 지방재정법 시행령은 상위법에 정면 위반된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총액 교부토록 한 입법 취지는 국가가 특정 목적 사업을 교육청에 강제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교육 자치권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과 관련한 정부의 행태를 쉽게 설명하면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에게 1천원을 주면서 담배, 과자, 껌, 라면, 칫솔을 사오고 900원을 남겨오라는 것과 같다. 정부가 시행령을 근거로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강제하는 것은 지방교육 재정을 부채의 늪에 빠트리고 교육자치권을 훼손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 교육청이 담당해야 할 지방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며 스스로 법률 위반을 자행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지방자치 제도를 무시하는 처사로서 대통령 공약을 믿은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다.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에 대해 직무유기, 감사청구, 검찰 고발 등을 운운하며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는 누리과정 사태 해결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정 지자체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전국 교육감들은 공동 대처를 통해 중앙 정부에 해결 방안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보육대란 논란을 야기한 책임에 대해 국민 앞에 정중히 사과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제안한 5자 회의에 조속히 참여해야 한다. 매년 되풀이된 누리과정 재원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풀어 보육대란을 막고 대통령 공약 그대로 진정한 국가책임 보육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김호겸 경기도의원(더·수원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