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유린' 진정한 사죄없이 더 언급 말라는 일본
졸속 합의한 정부… '무효화 외침'에 귀기울여야
"꽃할머니, 저번에 말린 꽃은 어떻게 됐어요?"
"아주 예쁘게 잘됐어. 들에서 국화꽃을 또 한 움큼 꺾어 왔지."
꽃할머니는 꽃누르미를 하신다. 일주일에 한 번 원예치료사가 찾아와 할머니를 도와드린다.
꽃할머니 얼굴은 두 가지다. 시무룩한 얼굴과 활짝 웃는 얼굴.
"웃어 보려고 해도 웃을 일이 없어. 뭐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이 있어? 좀 삐죽 웃으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꽃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활짝 웃으신다.

1940년, 열세 살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심달연 할머니는 강제로 트럭에 실려 간 이후 다시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심달연 할머니의 언니처럼 대부분의 '위안부'는 일본군과 전쟁터를 함께 옮겨 다니던 중 죽거나, 전쟁이 끝난 후 그대로 버려져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등의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가 없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용감하게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나섰던 238분의 할머니 중 이제 46분의 할머니만 생존해 계신다.
일본은 이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그들의 추악한 역사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거짓으로 덧칠하고 적반하장의 망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일본이 기다린 건 역사를 지울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역사를 다시 현재 속으로 불러들여 진행형으로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 가해자 처벌 등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여러 나라에서 통과시키자 일본이 불편해한 건 무엇이었던가. 오로지 자국의 국제적 위신에만 급급해하지 않았던가. 중국을 견제한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를 위한 미국의 입김에 의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이것으로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표명했으니 앞으로 더 이상 한국은 '위안부'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행동도, 조처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과 다를 게 무언가. 식민지 지배와 대규모의 전쟁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국제적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전쟁 범죄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인권 유린이 '위안부' 아니던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빠진 협상, 일본의 국가적 책임이나 진정한 사죄가 빠진 허울뿐인 형식적 합의, 가해국이 오히려 피해국을 향해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듯한 명령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는 합의, 이게 도대체 합의인가. 졸속으로 합의를 하게 된 계기와 불온한 저의가 미심쩍기 그지없다.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도 변함없이 추진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합의 무효화를 외치며 연일 집회를 여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찬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책 헌정식 때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마냥 부끄러워하던 꽃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그 분의 열세 살 적 해맑았을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