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광주 퇴촌면의 '나눔의 집', 강일출(89) 할머니는 이곳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좀 친해졌다 싶으면 이 얘기를 꺼내신다. 마치 우리네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들려주듯 말이다. 본인에게는 아픈 과거 기억일 텐데도 스스럼없이 말을 이어나가신다. 마치 녹음기를 꺼내든 듯 매번 똑같은 얘기가 반복되지만 강 할머니는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얘길 해줄 것이며, 우리 역사를 또 우리나라를 지킬 수 있게 똑바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힘든 내색 없이 방문객들에게 생생한 증언을 이어나간다.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은 "15년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 하더라도 할머님들의 기가 보통이 아니셨다. 하지만 요즘은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병원 가시는 일이 잦고 기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전한다.
현재 생존해 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47분. 그중 10분이 이곳에 기거하신다. 평균 연령 89세. 매년 대여섯분씩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이번 연말연시는 할머니들을 더욱 지치게 만들었다. 그날도 그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담판을 짓기로 한 한일 장관급 회담이 열리던 지난 12월 28일, 아침부터 할머니들은 걱정반 기대반으로 회담 결과를 기다렸다. 일부 할머니들은 식사도 거른채 이날 오후 3시반 회담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10억엔 규모의 재단 설립과 법적 배상이 아닌 아베 총리 개인 명의의 사죄를 받는다는 합의 결과가 발표되자 할머니들은 이내 분통을 터뜨리셨다.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 한번 듣지 않고 이뤄진 정부 차원의 합의라 더욱 실망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정부당국자들이 줄줄이 할머니들을 찾아 뜻을 잘 전달하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들은 결국 지난 13일 추위 속에 열린 수요집회에 나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효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이날 할머니들은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교수를 상대로 낸 손배소 판결을 받기 위해 법원까지 찾았다.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90세에 가까운 상황이다. 평안히 노년을 보내셔도 힘든 나이인데 자꾸 할머니들을 거리로 내모는 현실이 안타깝다. 1천200번이 넘는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매년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일본정부의 진정성있는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한다'고 알려왔는데도 말이다.
/이윤희 지역사회부(광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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