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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정현종 시인은 두 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 '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섬이 있다고 했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는데 우리는 무심하다. 때론 그 섬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추방되고, 고립된다. 이 섬의 이름은 장기 농성장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고립된 섬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자 가장 아픈 곳들"이라 부른다. 만화가와 르포 작가들이 짝을 이뤄 장기농성장을 찾았다.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살펴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썼다. 그들은 섬과 섬을 이어보자고 한다. 감성적이면서 힘이 있는 주장이다. 2014년 첫 번째 권이 출간되었고, 2015년 12월 두 번째 권이 나왔다.

'섬과 섬을 잇다 2'에서는 총 다섯 곳의 섬이 나온다.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3년째 자리를 지키는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는 농성현장. 민주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에게 의도적으로 안전상태가 의심스러운 차로 장거리 코스에 배치하는 전주버스, 싼값에 산 회사를 비싸게 팔기 위해 희망퇴직을 권하는 사측에 맞서 1년이 넘게 굴뚝에 올라가있는 스타케미칼, 문자 하나로 해직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싸움을 이어가는 기륭전자, 심야노동폐지라는 단순한 요구로 시작해 5년 넘게 이어진 유성기업. 신문 기사나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된 글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낯익은 섬들이다.

다섯 곳의 섬을 찾아간 만화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섬을 찾아간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서명을 받는 광화문 지하를 찾은 앙꼬는 섬뜩한 직관으로 서명운동현장을 스쳐가는 이들을 멀리 관찰한 뒤 카메라 앞으로 불러내 인터뷰를 한다. 평범한 이들을 인터뷰한 중간에 2014년 4월 17일 화재로 사망한 송국현 씨 에피소드를 넣었다. 전주지역 버스 노조를 찾아간 조남준은 충실하게 현장의 사정을 전달한다. 최악의 노동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파업을 했고, 736일만에 파업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회사는 낡은 차로 가장 힘든 구간을 운행하게 하고 헤고 작은 트집으로 해고를 통지한다. 2천500억 들어간 공장을 400억 헐값에 인수하고 2년 만에 공장 문을 닫았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굴뚝에 올랐다. 원혜진은 굴뚝에 오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호민은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대화형식으로 풀어갔다. 최규석은 노조를 파괴하는 '유성기업지회'의 사례를 극화로 구성했다. 만화가 채 담지 못한 현장의 자세한 이야기는 강혜민, 송기역, 유영자, 연정, 송경동의 르포기사가 다룬다.

만화는 치열한 현장을 옮기는데 적합하다. 작가 1인이 맨몸으로 현장에 다가가 그곳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다. 현장을 경험하고, 시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으니 글보다 효과적이다. '내가 살던 용산'(2010년) 이후 현장을 찾아가는 완성한 작품들이 꽤 늘어났다. 만화라는 매체를 빌려 고립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뜻깊은 작업이다. 그 중에서도 고립된 투쟁의 현장을 이어가는 '섬섬프로젝트'는 연속성에 있어서나, 이 탐욕의 시대에 꼭 필요한 연대를 위해서나 소중한 결과물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