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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가지에 눈발이 살아 있다
절속(絶俗) 후 하릴없는 생각들이
겨울눈으로 허공을 껴안아
뿌리 쪽 관다발 어디쯤에선
물길이 막힐수록 빛나는 적요
죽음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생(生)이 외도(外道)라면 눈은 또 무슨
경계의 밖인가 고사(古寺)의 숲은 밝아
여태 걸은 길들이 능선에 엉킨다
연(緣) 없는 나목(裸木)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야윌 때
대처로 가는 길 영원히 막힐러니

김종태(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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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상대방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만큼의 상처를 덮어주는 일이다. 상처의 부피가 깊을수록 나눠야하는 슬픔의 진폭도 비례한다. 죽어가는 생명은 삶으로부터 멀어지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누군가 옆에 있기에 가능하다. 삶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겨울눈'을 보면 자신을 키워온 '인생의 육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뿌리 쪽 관다발에서 물길이 막히어 썩어가는 나무에 내린 눈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눈꽃은 존재 내면의 크기를 '대처'해 주는 형상물로서 '생(生)이 외도(外道)'라고 할 수 있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있는 삶에서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서 있는, 겨울 한복판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