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12월 일반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후보에 32만 표차로 이기고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패해 대통령이 될 수 없었던 엘 고어는 선뜻 결과를 수용할 수 없었다. 결과에 승복하는데 한달여 시간을 끌었던 것은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인상적인 고별사를 남기고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이 시간 이후 부터 부시는 나의 대통령이다. 나는 그를 도와 정치권과 미국의 화합을 위해 앞장설 것이다. 부시에게 영광을."
누구나 앉아보고 싶은 자리를 버려야만 하는 사람의 심정은 만감으로 가득 차게 마련이다. 그게 '절대 권력'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歸去來辭'는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그 백미(白眉)가 윈저공이라고도 불렸던 '킹 에드워드 8세'의 고별사다. 1936년 12월 11일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고 그 무거운 책임을 짊어질 수도 없음을 알았다"라며 퇴위를 공식 선언했다.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벗는다는 그의 고별사는 충격과 감동을 던졌다.
닉슨의 고별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지난 1960년 美 대선에서 존 F 케네디에게 패한 후 언론을 꼬집는 고별사를 남겼다. "오늘이 마지막 회견이기 때문에 언론은 나의 말을 다 보도해줄 것으로 믿는다. 언론은 한 후보를 궁지에 몰아넣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 후보를 궁지에 몰아넣을 때는 반드시 한 사람의 기자를 보내 그 후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취재토록 해야 한다." 2001년 9·11테러 직후 지지율이 90%를 넘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퇴임을 앞두곤 지지율이 20%대 초반까지 추락했다. 이라크 전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고별사에서 "나에겐 국익이 최우선이었으며, 옳다고 믿는 것을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27일 대표직을 내려 놓고 평당원으로 돌아갔다. 여러 번의 퇴진 압력을 받았던 그였다. 그는 "끝이 새로운 시작이다. 혁신을 선택하던 그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하자"라는 고별사를 남겼다. 하지만 그의 고별사는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그가 다시 그 자리로 곧 돌아올 것임을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멋진 고별사로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정치인이 없는지, 아쉽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