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훈 04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
경제불황이 이어지면서 민심도 흉흉해지는 게 피부로 와 닿는 현실이다. 서민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인심은 메말라가고 있다. 이런 시국에 법은 어떠해야 하나?

얼마 전 대부업법이 여야 정쟁 통에 사라지게 됐다. 대부업법을 연장하는 개정안 통과시기를 어이없게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외면으로 대부업체에 급전을 빌려 쓴 서민들은 하루아침에 살인적인 이자에 무방비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악덕 대부업체라면 이자율을 턱없이 조정할 것이고 이미 돈을 빌린 가난한 채무자들은 속절없이 무지막지한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이때 서민은 법이 없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

30여년 동안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퇴직금을 털어 동네에 치킨집을 연 한 50대 퇴직자는 인근에 막무가내로 생기고 있는 경쟁 치킨점 때문에 일용직 근로자보다 못한 수입으로 생활해왔다. 그리고 얼마 전 신분증을 위조한 청소년에게 맥주를 팔다 적발돼 영업정지 처분을 맞게 됐다. 이 치킨집 사장은 "해도 너무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며 씁쓸해했다. 말하자면 이처럼 '융통성 없는' 법 집행에 눈물짓는 서민은 한둘이 아니다.

'이법위인(以法爲人)'이라는 말이 있다. 법은 무릇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동안 정부는 서민과 기업에 불편을 주는 불합리한 법령 철폐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듯했다. 각종 법 제도를 국민주권과 기본권 존중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법령 소비자인 국민에게 불편이 없도록 정비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불합리한 법을 바로잡자는 이 움직임은 최근 초심을 잃은 듯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융통성 없는 법은 서민들을 다시금 가혹한 현실로 내몰고 있다.

한때 동네 조그마한 분식집을 열더라도 7만~30만원 하는 국민주택채권을 매입해야 하는 법령이 존재했다. 이 법령을 없애자 연간 30억원 규모의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서민이 살 수 있는 따뜻한 법이 이 시대에 절실하다. 바로 이런 것이 법의 합리적 운영을 바탕으로 한 '선진법'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어려울수록 법은 서민에게 되도록 관대해야 법의 신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까. 융통성 없는 규제 일변 주의와 과잉규제는 서민의 삶만 옥죄는 냉혹한 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없고 법만 덩그러니 놓인 현실을 바라보며 경제불황의 깊은 그늘에서 웅크리고 있는 서민들을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법을 기다려 본다.

/최재훈 지역사회부(포천)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