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연예인이 사는 서울의 한 단지에서도 일부 세대에 난방비가 한 푼도 부과되지 않아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사법당국에서 계량기의 배터리를 빼는 등의 방법으로 난방비를 조작한 혐의가 있는 일부 세대를 조사했지만, 증거 부족과 고의성 여부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된 바 있다. 과연 우리 난방비 부과과정에는 어떤 비밀들이 숨겨져 있는 걸까.
우선 난방비는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방비 이외에도 우리는 전기, 수도, 가스 등 경우에 따라서는 온수요금을 낸다. 그럼에도 유독 난방비가 자주 문제가 되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우리가 가정에서 쓰는 양만을 단순히 측정하면 되는 전기나 수도 등의 다른 분야에 비해, 난방비는 여러 가지 항목을 동시에 측정해서 연산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에 계량기의 구조가 복잡하고 이 과정에서 고장이나 오류가 발생하거나 조작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실제로 작동원리를 조금만 알면 계량기의 본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나의 예로 연산을 위해 필수적인 배터리가 수명이 다해 방전되거나 고의로 제거하면 계량기는 기능을 못한다. 계량기를 제어기와 연동시키는 등의 기술적 보완을 통해 원천적으로 조작을 방지하는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한편, 중앙집중식 난방을 하는 단지에서 고의적인 조작은 아니지만 유량계를 사용할 때 난방요금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본래 난방은 필요한 열을 기계실에서 사용처인 세대까지 운반하기 위해 물을 사용하는데, 유량계를 설치하면 물의 양만을 측정하게 된다.
2009년 신축건물에 물의 양은 물론 열량까지도 측정하는 열량계만을 설치하도록 의무화되기 이전에 적지 않게 적용되었다. 유량계 설치 단지에서는 동일한 열을 난방에 사용하더라도 물을 많이 소비하게 된다면 그만큼 더 많은 양의 검침결과를 얻게 된다. 결국 이런 현상을 방지해주는 조치나 합리적인 제어장치 등의 보완책이 없다면 그만큼 더 난방비를 부담해야만 한다.
난방요금과 온수요금 부과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통 난방수와 온수는 기계실에서 하나의 가열장치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양쪽에 사용되는 열을 구분하지 않고 온수 단가를 미리 정해 요금을 부과한 후 나머지로써 난방요금 단가를 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사전에 책정되는 온수 요금 단가가 각 세대의 난방과 온수의 사용실태에 따라 부과 요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아파트와 같은 중앙집중식 난방에서는 어떤 세대에서든 난방을 필요로 할 때는 바로 열이 공급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 세대에서 밸브를 잠가서 난방열을 전혀 소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시설의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따른 일정량의 비용인 기본요금은 부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 요금체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면 요금부과 과정에서 불필요한 공동난방비가 증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파트 관리주체의 부실한 운영도 문제가 되고 있다. 관리주체는 검침결과를 검토해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세대에 대해서는 계량기와 검침과정을 종합적으로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만 한다.
난방으로 소비된 양의 검침결과를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시장에서 식재료를 살 때 저울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게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의 난방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기술 및 제도적인 보완을 위한 관계 당국의 적극적인 시책마련은 물론, 검침결과 조작에 의한 난방비 왜곡은 범죄행위라는 인식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성숙한 시민공동체 의식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하겠다.
/이태원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화재안전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