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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처녀가 동구 밖 멀찍이서 이쪽을 향해 서 있다. 아직 새 풀 옷 한 겹 걸치지 않은 채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까칠한 모습으로…. 봄은 흔히 겨울의 아다지오(느림)로부터 알레그로(빠름)로, 겨울의 느린 맥박으로부터 빠른 맥박으로, 겨울이라는 죽음으로부터의 소생 부활에 비유된다. 따라서 봄의 의인화(擬人化) 상징성도 짙다. 워즈워드와 보티첼리의 '봄', 셸리의 '서풍부(西風賦)'나 N 푸생의 '4계 시리즈', 그리고 비발디의 4계(季) 중 '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祭典)', 하이든의 '계절' 등을 굳이 꼽지 않더라도 봄은 쇄신과 부활, 소생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봄을 찬미 찬탄하고 봄의 진가를 떠받든 문학예술 작품 또한 숱하다. 중국 북송(北宋)의 시성(詩聖) 소동파(蘇東坡)는 '봄밤의 한 때는 천금에 값한다(春宵一刻直(値)千金)'고 읊었고 12세기 프랑스 운문 작가로 '성배(聖杯) 이야기'를 쓴 크레티앵 드 트르와(Troyes)는 봄을 가리켜 '환희가 세계를 불태우는 계절'이라고 했다.

그런데 모두가 봄 자체만을 찬양했고 찬탄했다. 그러나 봄이 춘하추동 4계의 시작이자 4계의 대표며 4계의 전부인 것처럼 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공신이자 문장과 시문에도 능했던 삼봉 정도전(鄭道傳)이다. 그는 '봄이란 봄의 출생이고 여름이란 봄의 성장(盛裝)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 겨울이란 봄의 수장(收藏)'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멋진 봄 예찬인가. 그의 '삼봉집(三峰集)' '정동방곡(靖東方曲)' 등 명저를 들지 않더라도 그는 당대 으뜸 천재였다. 오늘이 벌써 입춘이다. 긴긴 겨울잠 속의 '와춘(臥春)→좌춘(坐春)'이 떨치고 벌떡 일어선 봄이라 '立春'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얼음장 속 들녘을 조심스레 건너 동구 밖까지 와 '서 있는 봄(立春)'이 못내 반갑다.

오늘 집집마다 대문간에 써 붙이는 입춘 방(榜)처럼 누구나 입춘대길, 건양다경(建陽多慶)이었으면 좋겠고 모두들 산처럼 장수하고(壽如山) 바다처럼 부자가 되면(富如海) 좋으련만…. 입춘인 오늘만은 '大吉'이 무색하지 않게 욕 좀 덜 하고 덜 싸우고 덜 낙담, 한숨 좀 덜 쉬며 동구 밖 봄 처녀 맞을 준비나 했으면….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