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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지난 1월말 중소기업인들만을 위한 신년회가 열렸는데 그때 한 여성단체장이 한 건배사의 일부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모든 열정과 인생을 바쳐 중소기업을 일구지만 요즘 현실은 대표자들이 근로자보다 존중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경제인들이 존중받고 신바람 나게 일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 고용을 창출하고 근로자들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대로 우리 사회의 인권보장 수준은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했다. 단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와 인권보장 수준을 보라. 그런데 중소기업 대표자들이 근로자보다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인권을 보장해달라니(?).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에 들어가 보면 중소기업 대표자라는 이유로 터무니없게 힘든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보자. 산재사고가 나면 관할 행정관서는 반드시 중소기업 대표자를 부른다. 산재처리를 실수로 해태하는 경우에도 예외없이 중소기업 대표자가 출석해야 하고 대표자 앞으로 최대 1천만원의 벌금이 떨어진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예외가 없다.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에선 내부 조직에서 생긴 일도 중소기업 대표자가 반드시 출석해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근로자가 임금이나 노동문제로 고소라도 하게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중소기업 대표는 불려 나가게 되고 사실 확인이 되기 전에도 죄인취급을 받기 일쑤다. 터무니없는 고소의 경우에도 근로자에 대항할 징계 등의 권한이 대표자에겐 없다. 대부분 입증이 어려운 사안이 많아 대표자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근로자의 입장에 서려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소 억울하다 해도 합의를 종용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아니면 말고'식의 고소가 남발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대표들은 분란의 소지가 있는 근로자들도 끌어안고 함께 일하게 된다.

예전에는 중소기업이 망해도 대표는 잘산다는 인식도 있고 사실 그런 중소기업 대표들 때문에 선량한 기업인들이 도매급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각종 보증과 연대책임 등으로 중소기업이 망하면 대표자들은 가장 먼저 거지꼴이 된다. 오죽하면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중소기업인은 실패하면 사람도 아니다'란 말까지 있겠나. 또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의 노력을 하지 않는 기업은 생존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중소기업 대표들이 예전과 같이 편안히 펜대나 굴리고 적당히 자기 먹고 살 것을 뒤에 감춰두는 일은 웬만해선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도 균형적인 시각에서 기업인을 바라보았으면 한다. 한편으론 중소기업 대표들이 좋은 기업을 만들어 근로자와 소비자들의 행복에 기여하는 '존중받는 기업인'이 되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대표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이들의 경제활동을 가급적 선의로 해석하고 도와주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원샷 법도 그런 취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 타계하신 신영복 선생의 마지막 책(담론)의 마지막 장 제목은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다. 석과불식이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란 뜻이다. 농부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해 쓸 볍씨는 먹지 않고 보존한다. 그 부분을 읽으며 필자는 오늘날 산업현장에서 애쓰는 중소기업 대표들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볍씨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결국 경제가 어렵든 좋든 모든 부가가치는 이분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니까. 신영복 선생께서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바뀌기'를 희망했듯이 지금이야말로 이분들의 인권을 우리 사회가 돌봐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오죽했으면 경제단체장이 신년 덕담하는 자리에서 중소기업 대표자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게 되었을까.

/서승원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