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출토복식(出土服飾: 무덤에서 출토된 복식)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단국대학교(장호성 총장)가 3.1절을 앞두고 전통수의의 발전적 계승 등 전통 장례문화 복원에 발 벗고 나섰다.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는 삼베수의(壽衣)가 우리 전통장례 문화유산이 아닌 일제 잔재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출토복식을 고증해 신형 전통수의를 개발하고, 오는 17일부터 3월 6일까지 대학로 상명 아트홀, 3월 11일부터 4월 8일까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전통수의 특별전시회 '땅으로 시집가는 날'에서는 단국대 전통복식연구소(최연우 소장)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규정한 조선시대 예법과 절차,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수천 점 출토복식을 정밀하게 분석해 만든 비단 수의로 총 52종 100여 점이 전시된다.
남성은 '면복', '곤룡포', '단령', '심의', '철릭' 등 25종, 여성은 '적의', '원삼', '당의' 등 17종, 기타 부속품으로는 염습제구 및 치관제구 10종(염습제구:염습을 위해 쓰는 여러 도구, 치관제구:관의 겉에 쓰는 여러 도구) 등이다.
신형 전통수의 개발에는 약 1년이 걸렸고, 최 교수와 함께 전통의상학과와 전통복식연구소에 소속된 약 15인의 석·박사급 연구진이 제작에 참여했다.
전통문헌과 출토복식을 바탕으로 품목선정→일러스트→패턴→가봉품→본품 제작 과정을 거쳤고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자수집, 염색집, 금박집, 보석집 등 현장을 누비면서 자수실 하나하나의 색과 원단 종류, 무늬, 색을 정성스레 택했고, 수차례의 수정을 거치면서 그림으로 무늬를 표현해냈다.
최연우 교수는 "1934년 일제가 <의례준칙>을 규정하여 비단수의 전통을 금지하고 포목(布木-삼베와 무명)으로 수의를 마련하게 했다"며 "일제강점기에 삼베수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삼베수의를 전통수의로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중국산까지 비싸게 유통되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에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전통수의의 발전적 계승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조오례의'와 출토복식에 따르면 전통 장례의식에서 수의는 비단(견직물)을 주로 사용하되 모시나 무명(면직물)도 쓰도록 했다. 실제 전통장례에서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 을 사용했는데, 관리는 관복(官服)을,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심의(深衣)를, 여성은 혼례복 등으로 입던 원삼(圓衫)을 사용했다. 소재가 모두 누에고치의 실로 만든 비단이나 명주 또는 목화(木花)로 만든 무명이었다.
전통 장례문화에서 고인(故人)이 입던 수의는 삼베를 재료로 쓰는 게 금기시됐다. 다만 가난한 일부 백성들은 비단수의 등을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평상시 입던 삼베옷을 수의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본래 삼베는 돌아가신 분께 입혀드리는 수의에 쓰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입는 상복 소재로 쓰였다. 즉, 거친 삼베는 '가난'을 나타내는 동시에 유가족들이 죄인이라는 뜻으로 입었던 수의(囚衣)라는 뜻을 담고 있던 것이다.
삼베의 원료인 대마는 과거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흔하게 재배되다가 1976년 대마관리법이 시행된 뒤 공급이 대거 줄어들면서 오히려 고급이라는 인식이 장례업계에 퍼졌다. 지금은 재배지역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고급 삼베 수의조차 중국산 등 가짜가 판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연우 교수는 "조선시대 무덤은 회삼물 (灰三物,석회·황토·모래를 반죽한 물질)로 두르고 관(棺)도 옻칠을 여러 번 해 출토복식이 수천 점이나 발굴되고 있는데 그 중 삼베 옷은 한두 점밖에 없다."며 "삼베를 수의 소재로 쓰는 것은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고, 비단, 명주, 무명, 모시를 쓰는 것이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베수의를 비롯해 유족 완장과 리본도 조선총독부의 1934년 의례준칙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로 치장한 영좌 장식과 조화도 일제 잔재이다. 광복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일제 잔재가 우리 장례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최연우 교수는 "전직 대통령과 강제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조차 일제 잔재대로 장례가 치러지는 게 오늘날의 서글픈 현실"이라며 "바쁜 현대인들이 전통 예법대로 모두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수의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꽃 장식이나 조화도 없애고 전통대로 병풍을 세우는 방식으로 개혁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는 삼베수의(壽衣)가 우리 전통장례 문화유산이 아닌 일제 잔재라는 점에서 조선시대 출토복식을 고증해 신형 전통수의를 개발하고, 오는 17일부터 3월 6일까지 대학로 상명 아트홀, 3월 11일부터 4월 8일까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전통수의 특별전시회 '땅으로 시집가는 날'에서는 단국대 전통복식연구소(최연우 소장)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규정한 조선시대 예법과 절차,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수천 점 출토복식을 정밀하게 분석해 만든 비단 수의로 총 52종 100여 점이 전시된다.
남성은 '면복', '곤룡포', '단령', '심의', '철릭' 등 25종, 여성은 '적의', '원삼', '당의' 등 17종, 기타 부속품으로는 염습제구 및 치관제구 10종(염습제구:염습을 위해 쓰는 여러 도구, 치관제구:관의 겉에 쓰는 여러 도구) 등이다.
신형 전통수의 개발에는 약 1년이 걸렸고, 최 교수와 함께 전통의상학과와 전통복식연구소에 소속된 약 15인의 석·박사급 연구진이 제작에 참여했다.
전통문헌과 출토복식을 바탕으로 품목선정→일러스트→패턴→가봉품→본품 제작 과정을 거쳤고 광장시장, 남대문시장, 자수집, 염색집, 금박집, 보석집 등 현장을 누비면서 자수실 하나하나의 색과 원단 종류, 무늬, 색을 정성스레 택했고, 수차례의 수정을 거치면서 그림으로 무늬를 표현해냈다.
최연우 교수는 "1934년 일제가 <의례준칙>을 규정하여 비단수의 전통을 금지하고 포목(布木-삼베와 무명)으로 수의를 마련하게 했다"며 "일제강점기에 삼베수의가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삼베수의를 전통수의로 알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중국산까지 비싸게 유통되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에 철저한 고증을 통해 전통수의의 발전적 계승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국조오례의'와 출토복식에 따르면 전통 장례의식에서 수의는 비단(견직물)을 주로 사용하되 모시나 무명(면직물)도 쓰도록 했다. 실제 전통장례에서 우리 조상들은 '생전에 입던 옷 중 가장 좋은 옷' 을 사용했는데, 관리는 관복(官服)을, 선비는 유학자들이 입던 심의(深衣)를, 여성은 혼례복 등으로 입던 원삼(圓衫)을 사용했다. 소재가 모두 누에고치의 실로 만든 비단이나 명주 또는 목화(木花)로 만든 무명이었다.
전통 장례문화에서 고인(故人)이 입던 수의는 삼베를 재료로 쓰는 게 금기시됐다. 다만 가난한 일부 백성들은 비단수의 등을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아 평상시 입던 삼베옷을 수의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본래 삼베는 돌아가신 분께 입혀드리는 수의에 쓰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입는 상복 소재로 쓰였다. 즉, 거친 삼베는 '가난'을 나타내는 동시에 유가족들이 죄인이라는 뜻으로 입었던 수의(囚衣)라는 뜻을 담고 있던 것이다.
삼베의 원료인 대마는 과거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흔하게 재배되다가 1976년 대마관리법이 시행된 뒤 공급이 대거 줄어들면서 오히려 고급이라는 인식이 장례업계에 퍼졌다. 지금은 재배지역이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고급 삼베 수의조차 중국산 등 가짜가 판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연우 교수는 "조선시대 무덤은 회삼물 (灰三物,석회·황토·모래를 반죽한 물질)로 두르고 관(棺)도 옻칠을 여러 번 해 출토복식이 수천 점이나 발굴되고 있는데 그 중 삼베 옷은 한두 점밖에 없다."며 "삼베를 수의 소재로 쓰는 것은 전통에 위배되는 것이고, 비단, 명주, 무명, 모시를 쓰는 것이 전통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베수의를 비롯해 유족 완장과 리본도 조선총독부의 1934년 의례준칙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로 치장한 영좌 장식과 조화도 일제 잔재이다. 광복 70년이 넘도록 여전히 일제 잔재가 우리 장례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최연우 교수는 "전직 대통령과 강제종군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조차 일제 잔재대로 장례가 치러지는 게 오늘날의 서글픈 현실"이라며 "바쁜 현대인들이 전통 예법대로 모두 장례를 치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수의는 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국화꽃 장식이나 조화도 없애고 전통대로 병풍을 세우는 방식으로 개혁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인/홍정표기자 jp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