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가 최근 대북·안보 문제에 대한 '우클릭(중도 또는 보수성향 강화) 발언'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총선을 앞두고 북한 이슈가 부각되는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한 목소리를 내며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개성공단 중단 등 일련의 사태 속에서 김 대표가 종래 더민주의 입장과 온도차가 나는 것을 넘어 이질감까지 느껴지는 듯한 표현을 잇따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 14일 비대위 회의에서는 '햇볕정책 보완론'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햇볕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설계된 것이고, 새누리당이 집권한지 8년을 넘어 시대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며 "여기에 맞는 정책을 다시 보완·발전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햇볕정책이 지금도 맞는지는 진단해봐야 하고, 발전된 햇볕정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당이 계승해야할 대북 정책의 기본 중 핵심노선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보완·발전이라는 언급 자체가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한 참석자는 "우리가 어떤 햇볕정책을 해야 하느냐는 논의가 진행됐다"며 "일부 비대위원들은 김 대표의 햇볕정책 발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앞서 김 대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더민주에 생경한 용어인 '북한 궤멸'이라는 표현을 써 마치 보수 진영의 '흡수통일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눈총을 샀지만 그는 "그 말 자체를 취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응수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조치를 취했을 때도 무조건 반대가 능사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시간을 주자는 신중론을 폈다.
이런 태도는 당장 야권 내부에서 공격의 대상이 됐다.
더민주와 야권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국민의당은 '궤멸' 발언을 "민주세력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사안"이라고 규정하고 "차라리 햇볕정책 포기를 선언하라"고 비판했다.
햇볕정책을 내걸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무소속 박지원 의원은 KBS 라디오에 나와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렇게 막말을 하는 것은 굉장한 혼란만 오는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당내에서도 김 대표가 당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부글부글 끓는 분위기가 있지만 아직은 지켜보자는 기류가 강하다. 공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김 대표에게 가급적 말을 아끼자는 속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 한 재선 의원은 "김 대표의 용어가 그동안 더민주가 주로 사용한 것과 달라 혼선처럼 보이지 않나 싶다"며 "남북문제 해법이나 방향에 대해 아직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 측에서는 연이은 발언이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더민주를 향한 여당의 '종북 프레임' 공세를 차단하고, 경제 어젠다가 총선 이슈에서 묻히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도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김 대표는 지난 14일 비대위 회의에서 "이번 선거에서 안보 이슈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힘든 서민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민생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고, 비대위원들도 대부분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김 대표가 이날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 후 개성공단 중단 등 북풍 정국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김 대표는 국회 연설을 지켜본 뒤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한 상황이어서 그의 발언 맥락에 따라 대북 문제를 둘러싼 갈등 요인이 진화될 수도, 증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