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부모의 신고를 받은 지구대에서는 '가정폭력 관련 상담요청'이라고 접수 후 사건처리 절차를 알려 주고 경찰서에 상담을 받도록 안내했다. 경찰은 과거 가정폭력의 피해자 또는 제 3자의 상담전화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현장조치를 하지 않고 '상담문의'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경찰의 상담 이외에 수사와 출동을 통해 적극적인 대처를 했다면 살인을 면할 수 있었다는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상담 당시 피해자 또한 가해자에 대해 고소를 하지 않았다.
가정폭력에 관대한 우리나라는 심각한 폭력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 상황을 감수하거나 공포와 불안감으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주변의 권유에도 고소를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당하고 고소 및 이혼을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왜냐하면 고소·고발 후 안전을 보장 못 받는다는 불안감과 가족부양·경제적인 문제 등의 이유 때문이다.
가정폭력사건에는 일반인들이 모르는 좋은 제도가 많다. 피해자 의사에 따라 가해자를 형사처분하지 않고 가정보호사건으로 종결하면 징역이나 벌금형이 가해지지 않는다. 피해자 의사에 의해 가해자에게 접근·전화·친권행사제한, 사회봉사, 수감명령, 감호위탁, 상담 위탁 등의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다.
또한 가정폭력 피해자는 임시숙소에 기거할 수 있다. 3일부터 6개월 이내 단기보호, 2년 이내 장기보호까지 다양하다. 가정폭력 피해로 인해 원만한 가정생활이 어려운 경우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시장·군수로부터 생계유지비와 아이들의 수업료 등을 지원받는 제도,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재판 심리과정에서 간편한 방법으로 손해배상을 받아낼 수 있는 배상명령제를 통해 직접적인 물적 피해비용 및 치료비와 위자료도 받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조치들은 피해자가 직접 신고 및 접수를 해야 한다.
가정폭력은 당하고 있다는 신고만 있어도 경찰이 관련 지침에 따라 다르게 관리한다. 이를테면 가정폭력을 신고하고 A등급으로 분류된 가정은 월 1차례, B등급은 2개월마다 1차례 방문 또는 전화로 폭력사건 재발을 관찰한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 부모가 사건절차만을 물어보는 경우 '상담문의'로 처리하면 담당자는 알 수 없다.
최근 경찰은 112종합상황실 및 지역 경찰에 업무지시를 내렸다. 112신고 또는 전화 상담을 통해서도 피해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땐 '우선상담 출동불요'할 수 있게 했다. 112신고를 받다 보면 이미 일어난 사건이나 제3자가 사건에 대해 물어보는 경우 등 경찰출동은 필요하지 않고 상담만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담에 대해 위치를 알려주지 않거나 관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상담을 한 112 신고접수자나 지구대·파출소 경찰은 담당자에게 통보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는 가정폭력에 대해 이렇듯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사건이 줄지 않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신고를 머뭇거리며 당사자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처리가 되지 않는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편안하게 상담을 받고 지속 관리를 해 주는 안식처 같은 전담부서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찰이 가정폭력에 대해 상담만 요청해도 해당 전문가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시에 관리하도록 한 제도는 가정폭력사건을 줄이는 희망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김윤식 범죄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