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풀어헤친 칡넝쿨이 발목을 휘감는다 질긴 손아귀 같은 덩굴 밑에 켜켜이 쌓인 음지가 있다 무성한 푸른빛 속에 살기를 숨기며 큰 소나무를 포박중이다 바람결에 날아와 어느새 터를 잡고 야금야금 파고들며 휘어잡더니 제 뿌리를 땅 속 깊이 묻고 끝없이 뻗어가는 저 치명적인 호의, 누대를 이어온 그들의 보행법이다
우경주(1956~)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현실은 화합과 배반이 공존하는 모순으로 도착해 있다. 여기에는 거짓과 진실이 혼재하며, 거짓의 얼굴을 한 진실과, 진실의 얼굴을 한 거짓이 착종된, 이 세계는 갈등의 넝쿨이 서로를 감싸며 운신한다. 양립할 수 없는, 이러한 갈등(葛藤)의 어원은 '칡과 등나무'에서 비롯되었다. 칡 나무는 왼쪽으로 휘감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휘감으며 자라는데, 서로의 사정에 따라 하나 되지 못하고 얽혀있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맞설수록 둘 중에 하나, 혹은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갈등의 운명'이다. 요컨대 "머리를 풀어헤친 칡넝쿨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형상을 하고 "덩굴 밑에 켜켜이 쌓인 음지가" 있을 뿐이며, "무성한 푸른빛 속에 살기를 숨기며" 가면을 쓰고 있다. 혼란과 불화를 표상하는, 이 광경은 "누대를 이어온 그들의 보행법"이 아닐까? '욕망의 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보행법은 "땅속 깊이 묻고 끝없이 뻗어 가는" 뿌리같이, 오늘도 '야금야금' 우리의 목을 조이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