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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연출가
지금 우리는 누굴 기억하나? 전통예술의 명인 중에서, 생전에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은 기억하니? 꼭 그렇지 않다. 제자가 많은 인물이, 사후에 존경 받는다. 스승을 추앙함으로써, 제자가 더불어 존중받는다는 심리가 깔려있다. 탓할 순 없다.

전통예술과 관련해서, 제자가 없거나 적은 인물은 어떤가? 그 분들 중에 전통예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꽤 많다. 우선 떠오르는 인물이 이충선(1901~1989)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올림픽까지, 이 분은 현장에서 피리를 불었다. 그의 피리시나위가 있었기에, 1980년대 피리산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아쉽게도 요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자가 없는 스승'이 그러하다면, '스승 없는 제자'는 어떤가? 스승의 총애를 받지 않거나, 문하에서 나온 제자는 어떤가? 비슷한 처지다. 스승의 문하를 떠난 제자들은 문제가 있는가? 스승의 문하에 남아있는 동년배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거나, 인격이 부족한가? 아니다. 그 반대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성악연구회'가 있었다. 판소리와 산조, 민요와 병창의 명인들의 집합소였다. 여기서 이들에 의해 전통예술의 공연과 교육이 이뤄졌다. 그 때는 어땠나? 한 젊은이가 동시에 여러 스승에게 두루 학습했다. 그 시대의 불명예는 '사진소리'였다. 스승의 그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거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르치고, 제자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키길 원했다. 이런 명인들의 이런 명언이 있다. "스승의 문하에서 배울 땐 스승과 다름을 걱정하고, 문하를 떠났을 땐 스승과 같음을 경계하라!"

전통예술도 예술이다. 예술가의 주관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 그럼에도 다른 장르에 비해서 이런 의식이 실제적으로 부족하다. 국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과거 전통예술이 소멸할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명인명창들의 기록이 남아있고, 스승과 같아지길 바라는 제자도 많다. 적어도 20대와 30대는 다른 길을 택해야만, 국악이 더욱 풍성해진다. 현실은 어떤가? 그들을 지도한 대학교수가 연주회에 와서, 자신과 같게 연주하지 않는다고 분장실에서 제자를 타박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지금의 시대야말로, 더욱 '사진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아티스트로서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하다. 지금 국악계는 그 어떤 때보다 '스승 없는 제자'가 필요하다. 스승의 문하에서 전통예술을 올곧게 이어가려는 젊은이를 뭐라는 게 아니다. 국악의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요구된다.

공옥진(1931~2010)을 떠올린다. 부친이 판소리명창이다. 그의 문하에서 학습했지만, 자신의 공연형태를 만들어냈다. 공옥진의 1인 창무극(唱舞劇)이다. 어느 장소에서나 자신을 중심으로 공연할 수 있는 형태다.

이와 비슷한 인물로 무용가 조원경(1929~2005)이 있다. 한국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구미에 한국전통무용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통을 재현하기보다 자기화했고, 1인 무용공연의 방식을 택했다. 일찍이 전통에 창의성을 더한 인물이다. 국악계가 말로만 청출어람을 얘기하지 않길 바란다. 젊은 음악가들이 자신의 예술 주체자로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더욱 필요하다. 내일의 국악과 미래의 전통이 거기에 있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