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와 절대권력 파시즘적
폭력성을 기억한다면
자기패·이익 먼저 버리는 희생이
민주주의가 야권에 기대하는
마지막 희망임을 깨달아야

야당의 수도권 필패는 동시에 거대 여당의 탄생을 예고한다. 만약 선거든 혹은 그 후 합당을 하든 200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탄생한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재앙일까.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이 200명. 그것은 통제 불능인 절대 권력을 의미한다. 제헌에 가까운 헌법 개정의 유혹을 뿌리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헌법개정안의 의결 정족수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다. 권력체계의 변경도 가능하다. 이원집정부제, 신대통령제, 내각제에 이르기까지 해보고 싶은 권력체계도 많을 것이다. 당장 2017년 대선과 관련하여 이원집정부제의 대통령 모델과 의원 내각제 체제를 합성한 권력분점의 통치체제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것이다. 권력체계의 변혁을 통해 장기집권의 견고한 터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석이라는 절대 권력은 단순한 숫자적 의미를 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야당 필패와 여당 압승 논쟁 때마다 유신헌법체제를 생각한다. 유신헌법에 대한 평가를 잠시 접고 나면, 그 독특한 권력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유신헌법상 최고 권력기관은 대통령, 통일주체국민회의, 그리고 헌법위원회였다. 행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는 하위기관이었다.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했다. 일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으로부터 질타를 받던 국회도 손 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듬뿍 임명하면 되기 때문이다. 헌법위원회 수준으로 헌법재판소의 구성원을 바꾼다면 탄핵과 같은 위기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런 모델을 반추할 때마다 일본의 천황제와 의원내각제로 60여년을 집권하고 있는 자민당 모델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의 이념 확장에는 항상 한계가 존재한다. 거기에다 1여 다야 구도는 특정정당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는 풍부한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당들은 차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숱한 이합집산 끝에 현존하는 정당들은 본부중대와 2중대 논쟁거리에 불과하다. 야당은 선거에 승리해야 한다는 투기적 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의 토대마저 포기했다. 대표와 주요 정책 기구가 구태의연한 인물들로 채워지는 야당의 현실. 평화적 통일과 민주화를 꿈꾸었던 국민들이 미래가 암담하다.
그래서일까. 재통합을 놓고 거친 언사들이 오가는 현실이 서글프다. 하지만 필패와 절망이 커질수록 절대 권력의 등장은 더 빨리 다가온다.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감내해야 할 김정은 정권은 우리 선거판에 살아 있는 변수다. 북한을 둘러싼 신냉전이 만들어낼 거대 정당은 새로운 형태의 권력체제를 예고하고 있다.
위기를 예감하기 때문일까. 눈치 빠른 인사들의 사이버망명이 급증하고 있다. 야권의 분열과 한반도를 둘러싼 신냉전 구도가 파시즘 체제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트럼프로 대변되는 극우주의의 확산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는 강하지만 파시즘에는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파시즘도 사회주의도 우리가 희망하는 국가체계가 아니다. 건강한 국가는 좌우 권력이 균형 있게 공존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야권의 후보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한 분들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절대 권력의 파시즘적 폭력성을 기억하고 있다면 투기적인 출마보다 양보를 권한다. 상투적 구호보다 자기 패와 이익을 먼저 버리는 희생. 그것이 민주주의가 야권에 기대하는 마지막 희망이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