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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레이디를 중국에서 '第一夫人'이라고 하는 건 장칭(江靑) 양카이후이(楊開彗) 허쯔전(賀子珍) 루어푸런(羅夫人) 등 5명의 마오쩌둥(毛澤東) 부인 중 본처만을 가리키는 듯싶다. 하지만 5명 모두 주(周)나라 文왕 자손이라는 마오의 족보에 올라 있다. 그런데 한 부인만을 뜻하는 퍼스트레이디 호칭이 난제다. '퍼스트레이디A, B…' 등으로 부를 수도 없고. 미국서 First Lady 호칭이 사용된 건 1930년대부터였다. 그 전엔 대통령의 여성 형 명사인 Presidentress 또는 Mrs President 아니면 그냥 'OOO부인'으로 불렀다. 어쨌든 별의별 퍼스트레이디가 다 있다. 케냐의 키바키 대통령 부인 루시 키바키는 깡패였다. 2005년 5월 자신의 기사가 내키지 않는다며 새벽에 신문사를 습격, 기자의 뺨을 갈기는가 하면 사진기자의 카메라를 패대기치기도 했다. 사생아 출신 3류 배우로 퍼스트레이디가 된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은 2002년 7월 33세로 요절했고….

퍼스트레이디가 없어도 탈이다. 2006년 1월 취임한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46)은 독신으로 정육점 아줌마 출신인 누나 에스테르가 퍼스트레이디 역을 맡았고 쇼걸 출신으로 2009년 5월 이탈리아 장관이 된 마라 카르파냐(33)는 이혼한 베를루스코니(Berlusconi) 총리(72)의 퍼스트레이디 역을 대신했다. 가장 행복한 퍼스트레이디는 누구였을까. 뉴욕타임스는 6일(현지 시각) 타계한 낸시 레이건(Nancy Reagan)여사를 the Happiest First lady로 꼽았다. 화려한 은막 출신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라는 평가를 받았고 장수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94년 삶에 명암은 교차했다. 7살 때 부모가 이혼, 이모 손에 자랐고 유방암에다가 남편의 치매증을 10여 년간 간병하는 등.

그런데 그녀가 더욱 불행했던 건 성씨를 뺏긴 채 '낸시 레이건'으로 불린 그 점 아닐까. 한국의 초대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 여사도 불행한 일생이었다지만 성씨 'Donner'를 뺀 '프란체스카 Lee'로 불리지는 않았다. 모국 오스트리아에선 성씨가 둘인 'Francesca Donner Rhee'로 불렸지만. 이 점만은 한국이 단연 세계 최고 여성인권 선진국이 아닐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