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前대통령 시절부터 시작
3金시대, 영남·호남등 공천 필수
18대 국회, 친이-친박 힘겨루기
19대, 상향식 방점 국민공천 무게
'밀실공천에서 상향식공천까지….'
우리 정당의 공천사는 정권과 정당의 지도자에 따라 흥망성쇠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개혁의 상징으로 상향식 공천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실상은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정치권의 흐름이다.
4·13 총선을 앞두고 지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상향식공천' '시스템공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과거 공천에 대한 부정적 그림자를 털어 내고 국민들의 눈 높이를 맞춰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의 공천권은 과거 밀실에서 정치적 오너가 패권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자기 사람을 내리 꽂는 하향식 공천을 해왔으나 이제 정당의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공천도 국민에게 돌려주는 이른바 상향식 공천으로 변모해 가는 과도기에 서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정당의 공천사는 광복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1948년 제헌의회선거와 1950년 제2대 총선, 1954년 제3대 총선 당시는 사실상 정당공천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한 제3공화국은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의 강력한 과두형 정당정치가 특징이다.
무소속 출마를 금지해 정당공천을 필수로 하는 한편 정당법을 제정해 정당 등록요건을 강화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군소 정당의 난립을 막아 양당제를 구현한다는 명분 아래 이승만과 장면 정권 시기에 활약한 민간 정치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군부의 계속 집권을 용이하게 했다.
공천권은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에서도 절대 권력자의 힘에 의해 공천이 이뤄졌다. 이후 강력한 지역 정당구도가 형성되면서 각 지역 정당이 자기 지역에서는 선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의석을 독식하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영남·호남·충청에선 지역 정당의 공천 없이는 국회의원이 되기 어려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지역 패권을 가진 정당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대하고 정치자금을 비롯한 정치적 자원을 확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공천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했다. 3김 중심의 이 시대에선 가산(家産)주의(patrimonialism)가 팽배했다.
가산주의란 측근을 중심으로 정당과 파벌을 운영하면서 충성에 대한 대가로 복지를 책임지는 정치 행태다. 이 시기에 '밀실공천' →'돈공천' →'기획공천'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공천권의 전횡을 일삼았고, 공천에서 떨어진 후보들은 권력자를 찾아가 실력행사를 하는 등 난장판이 되기도 했다.
공천에 대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17대 국회에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국민정당을 지향하는 대중정당을 표방하며 공천과정에 일반국민과 대중이 참여하는 제도를 고착화 했다.
그러나 진성당원의 한 유형인 기간당원제를 도입해 민심과 당내의사결정의 괴리를 낳았다. 기간당원이 동원되는 전당대회식 당내경선이 남발되면서 종국적으로 '경선제 무용론'에 봉착했다.
이로인해 제18·19대 총선에서는 다시 공천심사위원회에 무게가 실리면서 하향식 공천으로 진행됐다. 보수와 진보 모두 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따라 당내 쇄신 작업, 이른바 물갈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외부인사들을 영입해 공천심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의 경우 친이(이명박)계가 공천권을 전횡해 공천에 대거 탈락한 친박(박근혜)계 후보들이 '친박연대'를 결성해 따로 선거를 치르기도 했고, 야권에선 친노패권과 후보 단일화라는 이름으로 전략적 연대를 통해 선거를 치렀다.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받고 있는 19대 국회에서 여야는 공천을 국민에게 돌려 주겠다는 상향식 공천에 방점을 두고 '국민공천'에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여야가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지만 역대 공천과정에서 2차례의 낙천이라는 아픔을 딛고 집권여당의 대표가 된 김무성 대표가 공천만큼은 국민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강한 신념으로 '오픈 프라이머리'를 주장해 상향식 공천제에 불을 지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숱한 반대가 있었지만 1차 여론조사를 거쳐 복수의 후보군으로 압축해 당원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경선을 실시하는 이른바 한국형 오픈 프라이머리를 착근 시킨 것이다.
아직 100% 상향식은 아니지만 20대 총선 후보 공천에서 국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야간에 비중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당내 권력자가 사심을 갖고 공천권을 행사하는게 아니라 국민의 참여를 높였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공직 후보를 추천하는 정당의 역할이 없어지고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한 인재 영입에 한계가 드러나면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벌써 나오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되는 이같은 상향식 공천제가 20대 총선 결과에 따라 새로운 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지, 실패한 제도로 용도 폐기될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송수은기자 sueun2@kyeongin.com
■김종인(金鍾仁)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전 보건사회부 장관, 국회 제11·12·14·17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
기억에 남는 책 : 근대 사회의 위기
#학력
1958년 서울 중앙고 졸
1969년 독일 뮌스터대 졸
1972년 경제학박사(독일 뮌스터대)
#경력사항
1973년 서강대 경상대 교수
1979년 서독 쾰른대 객원교수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재무분과위원
1989~1990년 보건사회부 장관
1990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2015년 건국대 경제학과 석좌교수(현)
2016년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