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권력 손에 쥔 경제전문가
경제민주화 vs 비판론자 악연
李, 상향식 공천 '강한 거부감'
金, 기존규칙 허물고 정면승부
민심의 바다 올라탈때… '승기'

70년대 경제관료를 거치며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오늘날 경제를 운영하는 가치관과 철학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두 사람을 '견원지간'이라고까지 평가할 정도로 생각이 다른 숙명적 맞수 관계가 됐다. 그런 두 사람이 공교롭게 정치권에서 여야 20대 총선 후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정국의 핵으로 부상하고 있다.
'공천 칼잡이'라는 악역을 맡은 이한구는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으로, 김종인은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회 대표로 추대됐다. 경제가 어려워서일까. 두 사람이 살아온 인생 여정과 개인적인 성향을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자리지만 양당은 그들에게 공천권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부여했다.
역대 최악이라는 19대 국회를 청산하고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공천권력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경제관료를 거친 경제 전문가다.
이한구 위원장은 1969년 행정고시 7회에 합격해 재무부에서 근무했고, 미국 캔자스 주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 대우경제연구소에서 활동했다. 과거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1년 365일 중 260일 이상을 같이 다닐 정도로 김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다고 한다. 국회에 입성한 뒤 정책실장, 정책위 부의장, 정책위 공약개발위원장을 역임했다.
2004년 박근혜 대표가 한나라당 구원투수로 나섰을 때 정책위의장에 지명돼 당의 간판 정책통이 됐다.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대선 후보의 주요 경제공약을 비판하기도 했고 원내대표 재직할 때에는 재계 쪽에서 반발하는 경제민주화·노동·환경 관련 법안에 대해 재검토를 하겠다며 여야 합의 사항을 뒤집은 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라고 불리는 그는 경제 정책적인 측면과 실물 경제 경험을 두루 갖춘 보수성향 경제통으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거침없는 비판을 해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기도 한다.
김종인 대표의 이력도 대단하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가 경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수재이기도 하다. 그가 지금도 국가 대개조론을 설파하며 높은 내공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의 역량이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973년부터 10여 년간 서강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를 지낸 이른바 '서강학파'의 핵심 인물이다. 1981년 총선에서 11대 국회에 입성했으며, 12대 총선에서 재임에 성공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배지를 달았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냈다. 김종인은 지금까지 전략가로 알려졌었고, 경제민주화 브랜드로 유명세를 날렸다.
높은 내공을 가졌음에도 두 사람은 개인적인 악연이 있다.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했지만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충돌했다. 18대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놓고 찬반으로 완전히 갈렸기 때문이다. 김종인 대표는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이한구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비판론자의 길을 걸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두 사람은 경제민주화를 놓고 낯 뜨거운 공방전도 벌였다.
김종인 대표는 그해 7월 3일 이한구 위원장을 겨냥해 독설을 퍼부었다. "(이한구가)재벌기업에 오래 종사해 그쪽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이라는 비판이었다. 이한구 위원장도 밀리지 않았다. "경제민주화가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경제민주화 내용이 뭔지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또 이한구 위원장은 "정치판에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나 포퓰리즘 경쟁을 하느라 정신이 없고 그래서 기업의 의욕이 떨어지고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김종인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저 사람하고 같이 일 못 하겠다.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 것 같고 태어나서 그런 정치인은 처음 본다"며 "그런 정신상태로 얘기할 수 없다.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당시 두 사람이 치고받은 대화록이다.
이한구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김종인 전 위원이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잘 얘기하지 않는다. 학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용어니까".
김종인도 당시 선대본부 공동대표 자리를 맡아 "이한구 원내대표가 경제민주화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재벌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경제민주화가 뭔지 잘 모르면 공부를 해야 한다. 국민의 80% 이상이 경제민주화를 알고 있는데, 그리고 내가 얘기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 이해가 아닌데,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상대하고 싶지 않다".
두 사람 간 대결로 당이 시끄러워지자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김종인의 손을 들어 주었고, 그 후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가 꾸려질 때 이한구는 이름도 올리지 못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총선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까.
겉으로 새누리당의 공천은 상향식 공천이고, 더불어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한구가 공천 룰 적용을 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몇 차례 기 싸움을 벌이며 색깔내기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향식 공천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선수가 공정한 경기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라운드 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그는 의정활동에서 '저 성과·비인기'를 공천의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저 성과 현역의원을 양반집 도련님, 월급쟁이 등으로 비유하며 컷오프(공천배제)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모든 광역시와 도에서 1~3개의 지역구를 우선 추천지역으로 선정해 전략공천을 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내면서 총선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다.
'김종인 표' 공천 드라이브도 만만치 않다. 구원투수로 발탁되고부터 파격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다 짜 놓은 공천 규칙마저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일축할 정도로 강공으로 몰고 있다. 친노파 등 당내 주류 진영의 강한 반발에도 물러서기보다 특유의 강단으로 정면승부를 택했다.
1차 컷오프에서 경기도 맹주 문희상 의원 등 친노 중진들을 대거 잘랐고, 2차 컷오프의 첫 타깃도 호남 민심 이반의 진앙지 였던 광주의 강기정 의원의 지역구를 전략공천 대상으로 결정했다. 386 운동권 출신으로 문재인 사단에 합류해 있던 현역들을 공천에서 배제하면서 긴장분위기가 더해지고 있다.
공천관리위원장은 홍창선 전 의원이지만 공천 대상자들은 홍 전의원보다 김종인의 발언에 더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입만 쳐다보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20대 총선은 두 노정객이 두는 바둑 알처럼 한 수(한 마디) 한 수를 놓을때 마다 흥미를 더하고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강한 캐릭터를 소유한 사람이다.
당장 두 사람 중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민심의 바다를 누가 올라타느냐가 이번 승패의 진검승부가 되지 않을까. 선거판을 요동치게 할 신의 한 수가 무엇일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의종기자 jej@kyeongin.com ·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사진/연합뉴스
■이한구(李漢久)

새누리당 제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제20대 총선 공직자후보추천관리위원회 위원장
국회 제16·17·18대 국회의원,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학력
1965년 경북고 졸
1969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영학과 졸
1984년 경제학박사(미국 캔자스주립대)
#경력사항
1968년 공인회계사시험 합격
1969년 행정고시 합격(7회)
1970년 재무부 사무관
1975년 대통령비서실 서기관
1985년 대우그룹 회장비서실 상무이사
1989~1999년 대우경제연구소 사장
200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2012~2013년 새누리당 원내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