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殺生簿)는 죽여 없애거나 살려둘 사람의 이름을 적어 놓은 명부(名簿)다. 살생부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15세기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한명회(韓明澮)의 살생부에서 유래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노련한 책사였던 한명회는 당시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는 데 걸림돌이 될 인물과 도움이 될 인물을 가려 죽일 자와 살려둘 자를 구분한 살생부를 작성, 수양대군에게 바쳤다.
정적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우리 정치권에도 살생부라는 명부가 돌기 시작했다. 시대별로 살생부의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으로 계파 간 공천 싸움과 텃밭 지역의 중진 물갈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됐다.
20대 총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나돈 살생부도 현역 의원 컷오프(공천배제) 대상자들의 이름이 그럴듯하게 올려진다. 높은 적중률 때문에 공천 정국에 살생부는 그만큼 위력을 과시하게 되고, 이름이 올려진 대상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도 여당인 새누리당 가에는 대구·경북, 부산·경남 등 중진 39명이 낙천한다는 내용의 살생부가 돌았다. 당시 공천은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도한 친이(친이명박)계 학살 공천으로 평가됐다. 살생부에 담긴 현역 중 친이계는 17명, 친박계는 15명씩으로 엇비슷했다.
야당가에서도 낙천 대상자들의 이름이 올랐고 실제 높은 적중률을 기록했다. 2008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도 살생부에 오른 의원들의 80%가 낙천하면서 높은 적중률을 보이기도 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금도 현역 컷오프 수치를 높이려고 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에선 최근 40명의 살생부가 실존하느냐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었고, 더불어민주당도 현역 20% 물갈이와 중진 정밀심사론이 제기되면서 일찌감치 살생부 명단이 돌고 있다. 최악의 국회에서 최선의 국회를 위한 살생부가 만들어질지 궁금할 따름이다.
/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
[이슈&스토리] 의원들 떨게하는 세글자 '살생부'
계유정난 일으킨 한명회서 유래
계파 정쟁·중진 물갈이 등 수단
적중률 높아 이름 오를 땐 '덜덜'
입력 2016-03-10 23:45
수정 2016-03-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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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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