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발이 있었다. 31명이 사망했다. 당시에는 누구도 사고의 심각성을 몰랐다. 방제복도 입지 않은 소방관들이 출동해 태연히 물을 뿌렸다. 그러나 그건 재앙의 시작일 뿐이었다.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24분.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원자력 발전소 4호 원자로 폭발 사고. 우리는 그때, 그날, 그 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체르노빌 원전사고'라고 부른다. 사고 36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주민 대피명령이 떨어졌다. 후유증은 끔찍했다. 5년 동안 7천명이 더 사망했고, 70여만명이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제 '체르노빌'은 재앙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올해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25년 후,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멈춰버린 시계가 있다. 잿빛 잔해로 남은 마을, 아무도 없는 교정에 덩그러니 서 있는 천사상, 오염된 땅, 버려진 어선….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이다.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이소마에 준이치 '죽은 자들의 웅성임'에서 그려진 5년 전 후쿠시마(福島)의 암울한 풍경이다.
그날 후쿠시마에서 울려 온 굉음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어쩌면 그 굉음은 인류의 귓전에서 영원히 메아리 칠지도 모른다. 너무나 무섭고 처참한 '재앙의 굉음'이고 '죽음의 굉음'이기 때문이다. 실시간 위성으로 중계된 사고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우리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재앙은 계속되고 있다. 비가 올때마다 고농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오염수는 그대로 바다로 흘러나간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다. 오히려 한술 더 떠 후쿠시마 원전을 관광지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다크 투어리즘'. 전쟁이나 사고가 벌어진 지역의 슬픔을 공유하고 추모한다는 명목의 새로운 관광 유형이다. 여전히 상당수의 피난민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 투어라니. 이중적인 일본의 감춰진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