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국
안승국 인천세관 관세행정관
인천공항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고향 친구도 있고, 예전 세관에서 근무했던 동료들도 있다. 개중에 잊을 수 없는 분들이 있다. 다름 아닌 험지를 마다하지 않고 봉사에 매진하는 분 들이다.

2014년 에볼라로 지구촌에 비상이 걸렸다. 급성 열성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치사율 60~90%, 예전의 전염병과는 확연히 달랐다. 정부는 그해 10월 서아프리카에 파견할 에볼라 대응 의료진을 모집했다. 하루가 다르게 죽어가는 생명을 두고만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응모하는 결단을 보면서 한국의 박애정신이 이렇게 위대하게 보인 적이 없었다.

한 지인은 시흥의 모 병원 응급과장으로 여기에 동승하게 된다. 고민을 거듭했던 그분을 보노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한 가정의 주부·아내로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다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40도가 넘는 서아프리카의 더위, 실제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일, 거기다가 하루 12~13시간씩 근무한다는 것도 상상 이상으로 고역이었을 게다. 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져 환자들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의사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또 한 분은 노숙자만 치료하는 특이한 케이스의 내과의사다. 인턴시절 우연히 노숙자들의 생활을 보며, 평소 낮은 자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맘 먹는다. 노숙자들은 거의 70%가 어릴 적 가정폭력에 시달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정의 폭력은 어찌 보면 대물림 비슷한 현상을 보이는데 본인은 선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어느 땐가 자신도 모르게 가족들에게 부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이런 분들에게 설상가상인 것은 복합질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더욱 슬프게 한다. 경제적 여건때문에 병원진료가 요원하니 질병이 악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다행인 것은 교회를 비롯한 여러 종교단체 등에서 진료 뿐만 아니라, 한끼 식사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따뜻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 준다.

며칠 전 필자에게 전화 한통이 왔다. 필리핀 오지에서 구강치과 봉사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다. 어떤 주민은 치아상태가 너무 불량해 24개나 뽑기도 했단다. 전남 고흥에 소재한 나환자 소록도에서 진료부장으로 근무하는 분의 얘기다.

거의 20년 동안이나 음지에서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하고 있다. 이분에게 느끼는 것은 진료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면서 동반자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점이 내게는 신선하게 느껴졌다. 소설가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천형(天刑)이라는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던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곳. 제한구역 이다보니 오히려 자연보호가 상대적으로 잘 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분들을 보며 문득 이런 말씀이 떠오른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안승국 인천세관 관세행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