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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나
저승에선
바람이었을지도 모를 일
머리 풀고 떠돌다
눈비 맞고 떠돌다
살과 살 다 섞은 후에
빈 몸으로 울었을 바람

이지엽(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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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사랑이 눈에 보이지 않듯 바람 역시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그것의 존재는 느낌으로 있는 것으로서 지금 삶에서 감각하는 것이다. 당신의 사랑도 바람이 불어오듯 저만치 오고 있거나, 이미 와 있거나, 어디쯤 당도하고 있다. 다양한 자질 가운데 사랑을 표상하는 바람의 특이성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다시 저승에서 이승으로 온다. 이 사랑은 삶과 죽음을 '떠돌다' 건너온 초월적 인연으로 유예되는 바, '그대와 나'라는 분리된 주체를 낭만적인 생명체로 합일시킨, '한줄기 바람'으로 도달하게 만든다. 이제 사랑은 무색채의 대상이 아니라 "머리 풀고 떠돌다 눈비 맞고 떠돌다" 피로한 '주체의 육체'를 드러낸다. "살과 살 다 섞은 후에 빈 몸으로 울었을" 당신도 바람같이 방황하다가 그곳에서 육체를 풀지 않았던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